“서로의 온도로 견딘 72시간의 ‘한남동 대첩’”… 3박4일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투쟁
민주노총 1박2일 투쟁, ‘한남동 대첩’ 되기까지
공수처 날씨 핑계, ‘키세스’ 되어 폭로한 시민들
들불처럼 번진 후원 행렬, “해방 광주 떠올라”
“동지된 우리는 끝까지,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3박 4일간 우리는 한번 더 동지가 되었습니다. 깨지지 않는 연대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더욱 굳건히 더욱 당당히 투쟁에 나서야 합니다.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민주노총의 1박 2일 철야 투쟁은 3박 4일동안 꺼지지 않는 시민들의 싸움으로 이어지는 마중물이었다. 3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한남동 관저 앞 진격 투쟁을 벌여낸 것을 시작으로, 민주노총과 노동자 시민들은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3박 4일간 한순간도 쉬지 않고 윤석열 체포 구속을 외치면서 전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켰고, 수사당국을 압박했다.
공수처 날씨 핑계, ‘키세스’ 되어 폭로한 시민들
공수처가 윤석열 체포 집행을 5시간만에 철수할 때, 시민들은 72시간동안 쉬지 않고 “공수처가 못하겠으면 우리가 하겠다, 비켜라”라고 외치며 체포와 구속을 촉구했다. 공수처가 ‘날씨 상황을 고려’해 영장집행을 하루 더 늦춘다고 할 때, 수 백명의 노동자 시민들은 눈보라 속 길바닥에서 밤을 새며 새하얘진 모습으로 이른바 ‘키세스’가 되어 수사당국의 무능을 폭로했다.
‘체포자(윤석열)에 대한 예우를 갖추라’는 지시를 받은 수사당국이 내란수괴 체포 주저하던 모습이 전국적으로 생중계된 이튿 날, 공권력은 신고된 장소로 행진하려던 민주노총 조합원 2명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졌다. 공권력은 이들 조합원 2명에 대해서 어떠한 혐의도 찾지 못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24시간동안 구금한 뒤 석방했다.
권력자 앞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하고, 약자들 앞에서만 힘을 휘두르는 국가폭력, 공권력을 모습을 시민들은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민주노총은 시민들에게 함께 투쟁하자고 호소했다. 윤석열 퇴진 투쟁의 길을 열었던 민주노총을 기억한 시민들은 ‘우리가 민주노총을 불렀듯이, 민주노총이 우리를 부른다’면서 한남대로로 집결했다.
당초 1박 2일로 기획된 체포 투쟁은 시민들의 열기에 힘입어 3박 4일 철야 농성으로 확대 연장됐다. 마지막 날 철야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공동의장단만 진행하기로 했으나, 백여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 밤을 지새웠다. 참가자들이 늘어날 때는 한남대로 전 차선을 차지하며 차량을 통제했고, 아침까지 밤새 농성한 참가자와 아침 첫 차를 타고 달려온 참가자들이 ‘바톤 터치’하며 집회를 이어갔다.
집회 무대는 대부분의 시간을 시민자유발언 형식으로 유지했다. 수 백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자유발언을 신청했다. 민주노총이 ‘투쟁’으로 인사하는 것 만큼이나 자신의 ‘정체성’을 소개하며 인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나이·출신지역·성적지향·성정체성·학벌 등 어떤 ‘정체성’이든 환대 받았다. 개개인이 살아온 삶이 곧 정치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윤석열 탄핵 이후 만들어나갈 사회의 모습에 대한 제시였다. 이 땅의 주인이자 주권자로서의 시민 자유발언들은, 광장을 정치로 만들었고, 정치를 광장으로 만들었다.
들불처럼 번진 후원 행렬, “해방 광주 떠올라”
연대와 후원 또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난방버스, 보건의료노조의 어묵 푸드트럭, 건설노조의 커피와 율무차 부스로 시작된 나눔의 물결은 SNS를 타고 퍼지면서 확대됐다. 일일이 셀 수 없이 많은 양의 생수·방호물품·위생용품·김밥·간식이 배달됐고, 따뜻한 음료와 음식을 나누는 푸드 트럭도 끊임없이 오갔다.
‘물품 배송 공지방’ 오픈 카톡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필요한 물품과 수량 등을 집계 공유하며 물량을 조절했다. ‘은박담요’가 필요하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 50분만에 은박담요 1만개가 후원됐다는 사연이 대표적이다. 3일 저녁 4대였던 ‘난방버스’는 5일 밤 16대로 늘었다. 시민들은 모두 노동자 시민들의 십시일반 연대로 이뤄진 것들이다.
집회장소 바로 옆의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교육관을 개방했다. 화장실과 쉼터, 난방과 전기와 물을 참가자에게 제공했다. 개방 직후부터 화장실 네 곳중 하나는 ‘성중립 화장실’로 지정됐다. 무대 바로 옆 건물인 일신빌딩도 1층을 개방해 시민들이 몸을 녹일 곳을 제공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그렇게 건물과 난방버스에서 몸을 녹였다가, 집회하며 구호를 외쳤다가, 따뜻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서 3박 4일의 광장을 만들었다. 한 시민은 “80년 해방광주가 이런 모습이었겠다 싶다. 동지가 된 이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안전함과 해방감이 놀랍다”고 했다.
3박 4일간의 한남동은 연대의 광장이 열리는 것을 직접 목도한 이들의 환희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시에 권위에 굴종하는 수사당국, 내란동조세력의 모습 또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환희와 분노가,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시공간이었다.
주권자들은 윤석열 체포영장 마감시한인 6일까지 한남대로를 사수하며 내란수괴를 체포하라고 촉구했지만, 공수처는 돌연 체포영장 집행을 경찰로 일임하겠다며 포기를 선언했다. 극우세력의 탄핵 ‘반대’ 집회는 계속되고 있으며, 6일 오전에는 국민의힘 국회의원 40여명이 이 집회에 참석해 내란동조 세력이 될 것을 부추겼다. 극우세력의 집회에서는 야당과 탄핵 찬성 시민들에 대한 힐난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 등 폭력적인 언사가 공공연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동지 된 우리는 끝까지,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3박 4일 투쟁을 총화하면서 “1월 3일 민주노총 투쟁을 시작하면서 저는 우리 조합원들에게 독립군의 심정으로, 시민군의 결의로 투쟁에 나서자고 했다.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달려와 주실 것이라 믿었다”고 한 뒤 “그 믿음은 현실이었다. 많은 시민분들이 눈보라 속에서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속에서도 이 자리를 1박 2일간 함께 지켜주셨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3박 4일간 우리가 그렇게 투쟁하는 동안에 공수처는 도대체 무엇을 했나, 체포 영장이 발부된 일주일동안 그들은 무엇을 했나 그들은 5시간 알량한 쇼를 하고 포기했다”고 일갈했다. 이어 “우리는 3박 4일간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윤석열 내란 수괴 개인이 아님을 확인했다. 국민의힘은 내란 동조 세력이 아니라 내란의 몸통이었다. 윤석열과 내란의 수뇌부 몸통과 수족을 모조리 쓸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양 위원장은 3박 4일간 동지가 된 우리들은 깨지지 않는 연대로 계속 나아갈 것이라면서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고 달라진 것이 없다며 한숨 쉬었던 과오를 반복하지 말자, 일제를 청산하지 못해 친일파가 날뛴다는 과오를 반복하지 말자, 군부 독재 부역자들이 여전히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푸념을 반복하지 말자”고 강조했다.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싸워야 한다. 우리의 힘은 저들을 굴복시킬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고 호소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오는 11일 토요일 오후 4시 광화문 동십자각에서의 긴급행동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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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주 기자 kctu.news@gmail.com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