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싸웠더니 함께 이겼다” 동지가 된 사람들, ‘트랙터 상경투쟁’을 승리로 이끌다

무박2일 '남태령 대첩' 현장스케치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동지가 됐다.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12월 21일 동짓날, 가장 긴 밤을 함께 보내면서 농민들과 시민들은 동지가 됐다. '2024년 우금치 전투'였던 '남태령 대첩'은 연대로 투쟁한 민중들의 승리로 끝났다.

21일 저녁, 윤석열을 규탄하기 위해 농민들이 꾸린 '전봉준투쟁단'이 서울을 진입하지 못하고 경찰의 일방적인 탄압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퍼졌다. 소식을 듣고 남태령역을 찾은 1000여 명의 시민들과 농민들은 "차빼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폭력적인 탄압의 현장을 밤새 사수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광화문 대규모 집회 참석자들이었다. '막차는 끊기고 첫차는 뜨지 않은' 시간에도 전농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을 통해 온라인으로 함께한 시청자는 2만여 명에 이른다.

22일 오전, 간밤의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남태령으로 빠르게 모여들었다. 차벽을 맞서고 트랙터와 화물차가 줄지어 서 있고, 그 뒤에 시민들의 대오가 들어섰다. 민주노총의 깃발도 일찌감치 올라갔다. '남태령 2번출구'로 방호물품과 후원물품, 배달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도 쉴 새 없이 왕래했다. 현장에 오지는 못했지만, 밤새 싸운 이들의 저체온증을 우려해 시민들이 대절한 '난방버스'는 무려 8대나 됐다. 농민들의 '트랙터 투쟁'을 엄호하러 나선 3만 여명의 시민들이 조금씩 조금씩 과천대로를 채우며 광장을 만들어갔다.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1500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10시 기자회견, 14시 시민대회 일정을 긴급하게 잡아 개최했다. 또한 경찰이 차벽을 치고 겁박하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일반적 행동의 자유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22일 오후, 경찰이 차를 뺄 때까지 자칫 지난할 수도 있었던 시간을 한층 더 깊은 연대의 장으로 만들어낸 것은 시민들의 발언들이었다. 자유발언을 위한 시민들의 줄은 끝없이 이어졌다. 아침부터 줄을 선 시민들은 5~6시간을 기다린 끝에 발언대에 올랐다. 많은 발언자가 자신이 성소수자, 장애인, 호남 출신을 밝히는 등 스스로가 사회적 약자·소수자임을 드러냈다.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씩 말할 때마다 위로와 연대가 담긴 박수가 나왔다. 어색하게 외치던 '투쟁!' 구호와 '동지'라는 단어는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이들은" 우리가 만난 지금, 광장에서 동지가 된 지금, 서로가 서로에게 끝없이 연결돼 있음을 확인했다며 연대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우리가 가장 어두운 시기 가장 밝은 응원봉을 꺼내고 거리로 나온 것처럼, 농민들도 가장 소중한 트랙터를 끌고 서울로 온 것 아니겠냐. 우리는 같은 마음이다"는 발언을 경청하던 어느 농민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농민을 비롯한 이 땅의 차별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광장에서 이들은 춤췄고, 노래했고, 발언했고, 울었고, 웃었다.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경찰에 의해 가로막힌 상경투쟁길이 22일 오후 5시께 열렸다. 앞서 사회자가 "경찰이 차를 뺀다고 한다"며 승리를 선언한 순간 환호가 터져 나왔다. 32시간 만에 트랙터가 시동을 걸자 "우리가 이겼다. 함께 싸워 승리했다"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농민들은 알고 있었다. 시민들이 연대하지 않았더라면, 땅끝에서부터 트랙터를 몰고 오다가 법적 근거 없이 가로막히고, 진압당했을 것이며, 자칫하면 연행 또는 구속당할 것이었다. 농민들에 대한 경찰들의 '천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경찰의 폭력이 잦아들기 전이었던 21일 오후 10시 30분,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조합원 두 명은 간밤에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가하려다가 경찰에게 연행됐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관악서에 구금 중이다.

남태령 대첩 전선이 펼쳐진 바로 옆은 수도권방위사령부로, 윤석열의 내란(계엄)이 성공했다면 수많은 시민을 가둬놓았을 벙커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긴 밤 2030 여성들을 주축으로 한 시민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투쟁은 벌써 진압됐을 것이라고 농민들은 입을 모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행된 경찰의 노골적인 멸시와 진압은, 시민들이 밤을 사수하고 결집하자 그 폭력과 통제의 수위를 낮춰갔다. 해가 뜨고 더 많은 이들이 남태령에 모이자, 경찰들은 이내 자신들이 쳐놓은 차벽 뒤로 모습을 감춰버렸다. 추운 날씨에 이미 광화문 집회를 마친 뒤 발걸음한 시민들을 반기면서도, 동이 틀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는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농민들의 투쟁에 나서주는 건 전례 없는 일"이라며 한 번 더 고마움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견고했던 경찰들의 차벽이 허물어지는 광경을 보자 감탄과 눈물과 환호가 뒤섞여 나왔다. 트랙터와 시민들이 사당역까지 함께 행진했다. 130년 전 격전을 벌였지만 결국 넘지 못했던 우금치 고개 기억하던 농민들이, 시민들의 손을 잡고 2024년 남태령 고개를 넘는 순간이었다.

"경찰 차뺐다, 윤석열은 방빼라" 사당까지 행진한 뒤 시민들은 윤석열 관저 인근인 한강진역으로 집회 장소를 옮겨 계속 구호를 외쳤다. 트랙터가 마침내 도착하자 트랙터 행렬을 뜨겁게 환영하며, 승리를 만끽했다. 이들은 "이제 시작이다. 우리의 힘으로 윤석열을 끌어내릴 때까지 계속해서 광장을 만들고, 연대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결의했다.

가장 어두운 날을 함께 보내며 동지가 된 민중들이 함께 맞는 다음날은, 어제보다 조금 더 많은 볕이 들고 있었다.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21일부터 무박2일간 '전봉준투쟁단'이 서울 진입 투쟁을 벌이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이 광장을 열어냈다. 사진=송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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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주 기자 kctu.news@gmail.com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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