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제 13 화
햇빛 좋은 어느 날.
일군의 바퀴벌레들과 앵무새들이 동네에 들어 왔다. 이들은 다짜고짜 돼지네 집으로 향했다. 돼지는 당황했다. 앵무새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런 후 돼지 집을 싹 뒤졌다. 돼지 부하의 집도 찾아가 장롱이며, 싱크대, 화장실까지 샅샅이 훑었다. 또 그들은 일꾼들의 숙소까지 들이닥쳤다. 역시 무언가 잔뜩 상자에 담아 챙겨 나갔다. 모두가 당황했지만 가장 당황한 건 뾰족한 이빨의 늑대였다.
“형님, 큰 일 났습니다. 바퀴벌레와 앵무새들이 들이 닥쳤습니다.”
“뭘 그런 거 갖고 당황하고 그래?” 이렇게 얘기했지만 꼬리에 검은 색 털 있는 늑대 역시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피할까요?”
“야, 앵무새는 몰라도 바퀴벌레는 우리한테 함부로 못해!”
“예전에 친분이 있었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래도 형님. 일단 빼 돌릴 건 빼돌립시다. 예?”
“지금 움직이면, 쟤네들이 더 의심한단 말이야. 잠자코 더 열심히 일해!”
“그럼 저만이라도 나가서 증거가 될 만한 거 챙겨 나갈께요. 예? 형님?”
“겁은 많아 갖고! 알아서 해!”
꼬리에 검은 색 털 있는 늑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뾰족한 이빨의 개는 튀어 나갔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뾰족한 이빨의 개는 ‘일당도 받지 못하는데...’라고 아쉬워하며 부랴부랴 짐을 챙겨 동네를 빠져 나갔다.
꼬기에 검은 색 털 있는 늑대를 비롯해 이들과 친분이 높았던 일꾼들 역시 마음은 싱숭생숭해졌다. 이렇게 까지 될 것이란 걸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전 전국이 떠들썩할 정도로 자신들의 정체가 밝혀졌지만, 통상 이런 일은 며칠 지나면 잊혀 진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돈 없는 자들의 잘못은 몇 날 몇 일 떠들어도, 돈 많고 힘 있는 자들의 잘못은 금방 덮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들어오다니 상상도 못했다.
저마다 마음들이 그러하여 하나 둘 일터를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 때 이들에게 연락이 왔다. ‘일터에서 나오는 즉시 옆 동네 다리 밑으로 모이라.’는 내용이다. 하나 둘 일을 정리하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다리 밑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곳에 제일 먼저 도착한 건 다름 아닌 두더지였다. 두더지는 일꾼들이 다가오자 다짜고짜 소리를 쳤다.
“야, 니들 어떻게 된 거야? 이런 거 예상했었던 거야?”
꼬리에 검은 색 털 있는 늑대는 기분이 나빴다. ‘어따 대고 반말인가?’싶었다.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 보냐? 돼지한테 가서 물어봐야지!”
“대충 얘기는 들었을 꺼 아냐?”
“못 들었어! 알았으면 이렇게 급하게 나왔겠냐?”
“뭐 뭐 털렸어? 빨리 얘기해봐! 거기 나랑 관련된 것도 있어?”
“몰라. 대충 뭐 가져가긴 했는데.”
“그걸 확인해야지! 거기에 나랑 연관된 거 있으면 안 되잖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앞으로 어떻게 할 지 그걸 먼저 얘기해야지!”
꼬리에 검은 색 털 있는 늑대의 말투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두더지는 순간 꼬리를 내리며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니 생각은 뭔데? 니가 대장을 자처 했으니 니가 지도해 봐”
“내가 니들 대장이냐? 니들 대장은 너자너!”
“아니 얘 좀 봐라. 말을 또 이렇게 바꾸네. 니가 대장하겠다던 곳에 우리가 들어 왔잖아. 그러니 니가 대장이지.”
“불리할 때만 대장이래요!”
“대책 얘기해 봐.”
“오늘 바퀴벌레나 앵무새들이 가져간 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뺏긴 거나 걔네들이 임의로 가져간 게 어떤 건지 쭉 이야기해 보자.” 각자가 돌아가며 뺏긴 것들에 대해 늘어 놨다.
다 확인 할 때 쯤 뾰족한 이빨의 늑대가 왔다. 뾰족한 이빨의 늑대는 걱정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내가 중요한 건 대충 빼 놨습니다. 제가 이럴려고 빨리 나온 거에요”
마치 도망치듯 나온 게 찔린 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꼬리에 검은 털 있는 늑대는 들은 척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이 정도를 돼지 부하에게 연락해 주고. 앞으로의 일을 얘기해 보자.”
“니들 겁먹었냐?” 두더지가 비아냥거렸다. 이 말을 들은 꼬리에 검은 털 있는 늑대는 눈에 힘을 주며 두더지를 쳐다봤다.
“아냐, 농담이야! 니들은 그럴 수 있을 것 같어. 여기도 다 속이고 들어 온 거니까!”
“너 자꾸 그렇게 이야기할 꺼야? 우리가 이 정도에 겁먹을 거 같아!”
“누가 그렇대!”
“이 정도는 다 예상했던 거야. 그러니까 내가 대포 폰도 만들고 한 거잖아. 하루 이틀 해 봤겠냐? 이게 다 너 같은 노가다 출신이 모르는 우리들만의 노하우다.”
“잘난 척은....그래서 내일부터 어떻게 할꺼야?”
“너는 아까부터 계속 니 역할을 까먹는 것 같다. 여기 대장은 너다. 너 때문에 우리가 빨리 드러난 거라고! 그러니 니가 책임있게 얘기 좀 해봐!”
순간 두더지는 또 생각없이 덤빌 뻔 했다. 그러더니 금방 꼬리를 내려 말했다.
“꼬리에 검은 색 털 있는 늑대 니가 이런 건 잘 알 테니 먼저 얘기해봐.”
“일단 우리가 밀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우리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줘야지. 오늘 우리가 일터에서 빠져 나오는 걸 보고 내일부터 쟤들은 대대적으로 우릴 놀려 댈 꺼야. 그러니 우리는 의연한 척, 아무 일 없었던 척 하는 거지.”
“어떻게 말입니까?” 뾰족한 이빨의 늑대가 말을 받았다.
“생각해 봐. 내일 그냥 정상적으로 출근하면, 우리가 어떤지 쟤들은 궁금해질 꺼야. 그리고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겠지. 그 전에 우리가 오히려 쟤네들을 열 받게 하는 거지”
그 때 꼬리에 검은 색 털 있는 늑대의 전화기가 울렸다. 돼지 부하의 전화였다.
“응. 응. 알았어. 그렇지 않아도 생각하고 있었어. 응”
전화를 끊은 꼬리에 검은 색 털 있는 늑대는 더욱 자신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