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제 10 화
코끼리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두더지는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이다.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왔어? 우리가 이 늦은 밤에 만나는 사이는 아니잖아?” 두더지의 말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코끼리는 인내심을 갖고 말을 꺼냈다.
“너구리랑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며?”
“그건 또 어떻게 들었대? 하여간 이 동네엔 입 싼 것들만 잔뜩 해요.” 이번엔 비아냥이다.
“그렇게 말하지 말고. 동네주민들도 걱정되니까 하는 얘기들이지”
“뭘 걱정해? 나를? 아니면 너구리를? 도대체 뭐를?” 이번엔 악다구니다.
“나도 걱정돼서 온 거잖아.”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이번엔 조롱까지 섞였다.
“좋게 화해할 생각은 없어?”
“뭘 좋게 화해를 해. 걔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다음엔 가만 안둔데. 걔랑 나랑은 이미 다음이 없어요. 둘 중에 하나가 없어져야 끝나는 거라고!”
“그 전에 두더지 니가 사과를 했으면 그렇게까지 말 했겠어?”
“내가 왜 사과를 해? 필요 없어! 그런 시답지 않은 얘기할거면 가! 내가 지금 너한테 설교 듣게 생겼어?”
“왜 이렇게 삐딱해. 같은 동네 살면서 잘 화해하면 좋잖아!”
“필요 없대두! 난 이미 다 준비해 놨어. 봐, 이제 내가 하는 것들을!”
“그러지 말고, 니가 화난 것도 이해는 하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이렇게까지 뭘? 난 아직 아무것도 안했다. 준비만 했지.”
“뭘 준비했는데? 돼지 만난 거 말하는 거야?”
순간 두더지는 눈이 동그래졌다. 얘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의문을 가졌지만 티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돼지를 왜 만나? 어디서 쓸 데 없는 소리나 듣고 와서는”
“안 만났으면 다행이구. 두더지야, 그러지 말고 내일 나랑 같이 너구리 만나서 좋게 화해하자. 너구리 뒤 끝 없는 거 알잖아! 잘 이야기하면 될 꺼야.”
“난 뒤 끝 작렬이거든. 필요 없으니까 이제 그만 가시지!”
“알았어. 오늘은 너도 화가 많이 난 거 같으니까 오늘은 쉬어. 그리고 생각은 해봐.”
“아~ 참! 귀찮게 하네. 난 마음 바꿀 생각 없으니까 오지랖 떨지 마시고 가라고!”
“그래 간다.”
코끼리가 나오자 두더지는 방문을 쎄게 잡아 당겨 닫았다. 방에서 나온 코끼리는 깊은 한 숨을 내 쉬곤, 어두워진 밤하늘을 바라봤다. ‘그렇게 당황하는 걸 보니 두더지가 돼지를 만난 게 틀림없어. 또 뭔 꿍꿍이를 하고 있는 걸까? 걱정이네.’ 그런 생각을 하며, 물소의 충고가 떠올랐다. 물소의 말대로 벽에다 대고 얘기해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는지. 어떻게 저렇게까지 변해버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코끼리는 그런 두더지를 생각하며 오히려 두더지가 불쌍해졌다. 저렇게 살면 말년이 외롭다는 걸 두더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코끼리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다음 날 저녁 무렵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국밥집에 꼬리에 검은색 털 있는 늑대가 혼자 앉아 있다. 곰을 만나기로 한 날이다. 7~ 8분의 시간이 흐른 뒤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 왔다. 멀리서 보니 일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돼지 부하와 곰이었다. 꼬리에 검은색 털 있는 늑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곰과 돼지 부하가 가까이 오자 곰을 향해 90도 가깝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곰은 악수를 청하며 인사했다.
“어, 오랜만이지?”
“예. 잘 계셨습니까? 몇 번 찾아뵌다는 게 죄송합니다.”
“아냐, 됐어. 이렇게 만나는 거지 뭐. 일로 보는 거야. 선수들은.”
곰과 꼬리에 검은색 털 있는 늑대는 처음 보는 사이가 아니었다. 지난번에 개에게 이야기해서 만났을 때도 이미 곰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개를 믿을 수 없다는 것도 있고, 모집책이 아니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도 서로 모른 체했던 것이다.
곰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렇지 않아도 빨리 보려고 했어. 계획이 좀 변경됐거든.”
“어떻게요?”
“일단 니 얘기부터 듣자. 왜 보자고 했어?”
“아. 네. 송구한 말씀이긴 한데 애들이 좀 힘들어 합니다. 일은 일대로 하고, 저쪽 애들이랑 친해지려고 매일 같이 술도 먹고, 간간히 교육도 받아야 하고..”
“그래, 힘들꺼야. 그래서?”
“그래서 두 가지 정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는 애들 따로 주는 거 있잖습니까? 그 금액을 좀 더 높여 주셨으면 합니다. 또 하나는 애들 사기진작을 위해서 전체 회식을 시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 회식은 한 번 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필요하긴 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야 하니까. 그런데 돈 문제는 내가 임의로 결정할 수 없어. 너도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 때 옆에 있던 돼지 부하가 끼어들며 말했다.
“가능할 겁니다. 구체적인 액수를 말씀하시면, 제가 돼지님께 보고하고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줘. 얘가 말하는 것처럼 뭐니 뭐니 해도 일을 할 때는 사기가 중요한 거야. 돈 몇 푼으로 애들 흔들리게 하지 말고 통 크게 해 주자고!”
“고맙습니다.”
“고맙긴. 내가 고맙다. 내가 한 마디 했을 뿐인데 다른 애들까지 쫙 해서 들어와 줘서. 다른 애들 다 잘 있지?”
“예, 잘 있습니다.”
“그래, 뭐 나는 니가 대장하고 있으니까 걱정은 안 된다. 다만, 뾰족한 이빨의 늑대는 단도리 잘하면서 가라. 걔가 종종 돈 앞에서 흥분을 잘 하잖아.”
“예, 알겠습니다. 잘 따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애 쓴다. 회식 날짜는 돼지 부하가 잡아서 통보 할 테니까. 너는 애들만 잘 모아서 데리고 오면 돼. 그 자리엔 나도 한 번 나가지 뭐.”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선배님, 하실 말씀이... 계획이 바뀌었다는 건 어떻게...”
“어, 그거 말이지!”.........................................................(11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