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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마수운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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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6년 9월 21일 (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김성근 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수십 년째 만나지 못한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분들, 남북 이산가족 분들입니다. 내일모레 23일이 바로 '이산가족의 날'이기도 한데요. 안타까운 건 현재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 가운데 생존하신 분들이 3만 2천여 명입니다. 생존자의 3분의 2가 80세 이상의 고령자이신 것도 굉장히 안타까운 지。인데요.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추석 명절을 앞두고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34년간 대한적십자사에서 남북 적십자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현장을 지켜보시고 최근엔 관련한 책도 펴내신 분이에요. 김성근 전 남북 적십자 회담 대표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성근 : 네, 안녕하세요. ◆ 박귀빈 : 예, 추석 연휴 앞두고 찾아와 주셨는데요. 짧게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김성근 : 네, 제가 오랜만에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이렇게 추석이 다가오고 그러니까 좀 옛날 생각들도 많이 나고 이산가족들의 아픔들, 뭐 이런 것들이 많이 생각이 났습니다. ◆ 박귀빈 : 네, 전 남북 적십자회담 대표셨어요. 김성근 대표님 모셨는데요. 34년간 대한적십자사에서 일을 하셨고 최근에는 <판문.에서 금강산까지>라는 책도 펴내셨습니다. 아무래도 이제 관련한 이야기를 쭉 담으신 것 같은데요. 얼마 전에도 백두산 다녀오셨다면서요? ◇ 김성근 : 네, 백두산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이제 북한으로 들어가서 볼 수는 없으니까 중국을 통해서 이제 백두산을 보게 됐는데요. 과거하고 다르게 날씨가 너무 좋아 가지고 천지를 아주 맑게 보고 왔습니다. ◆ 박귀빈 : 얼마 만에 가신 거예요? ◇ 김성근 : 그러니까 제가 3년 만에 갔었는데요. 그때 처음에 들어갔을 때는 날씨가 좀 흐려서 제대로 보지를 못했거든요. 근데 이번에 너무 날씨가 좋아 가지고 북한 지역이 거의 다 저쪽까지도 다 보이고, 또 망원경을 통해서 보니까 북한의 주민들도 거기서 이렇게 작업하는 모습들도 보이고 해서 옛날에 제가 한참 일했을 때에 북한 사람들하고 같이 이렇게 했던 그때도 생각이 나고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 박귀빈 :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시면서 굉장히 맑던가요? ◇ 김성근 : 네, 그러니까 이게 백두산을 보기가 쉽지 않은 거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뭐 서너 번 가도 또 볼 수도 없는데, 마침 우리가 갔을 때는 그날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진짜 아주 청명한 그런 날씨였고, 1년에 몇 번 정도밖에 볼 수 없는 날씨라고 그렇게 그러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뭐 북한 지역까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 박귀빈 : 대표님이 대한적십자사에 계시면서 남북 관련한 일들을 쭉 해오신 건가요? 어떤 어떤 일들을 하셨어요? ◇ 김성근 : 저는 이제 대북 관련 업무를 했기 때문에 적십자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려고 그러면 적십자 회담을 해야 됩니다 바다이야기 무료머니 . 적십자 회담을 제가 시작을 하면서 수행원으로부터 이제 회담 대표들을 모시고 다니는 일을 시작을 하다가, 제가 어느 정도 이제 좀 시간이 되니까 회담 대표로 나가게 됐고 북측 사람들하고 협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상봉 현장에서는 이산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끔 그 모든 행사를 진행을 했었고요. 그리고 남북 관계가 이제 좋아지는 그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 업무, 그것도 저희 부서에서 진행을 했기 때문에 인도적 지원 업무까지 진행을 했었습니다. ◆ 박귀빈 : 보통 이산가족 상봉하게 되는 계절이 따로 있나요? ◇ 김성근 : 1년에 한두 차례 이렇게 만나기 때문에 남북 간의 관계가 좀 좋아지게 되면 이산가족 상봉을 하자 그럴 때 주로 이렇게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나 설 계기로 상봉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다른 일정도 좀 나오긴 하지만 주로 이런 계기 때 만나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 이맘때네요. 지금 추석을 앞두고 있거든요. 이맘때가 되면 우리 대표님 마음도 좀 남다르실 것 같고, 무엇보다 이산가족분들의 심정은 어떠실까요? ◇ 김성근 : 이제 시간이 많이 흐르고 그러니까 어르신들의 몸도 좀 불편하실 것 같고, 대체적으로 고령이시다 보니까 기억력도 좀 희미해질 수도 있고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석이라는 특별한 어떤 계기가 되면 우리 일반인들이 느끼는 그런 감정하고 좀 다르게 북측에 있는 가족들을 더 많이 그리워하고, 또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제 가족에 대한 기억들이 선명해질 거라고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 박귀빈 : 근데 또 이렇게 9월 중순에 이산가족의 날이 있었네요. 9월 23일이 이산가족의 날입니다. ◇ 김성근 : 네, 그렇습니다. ◆ 박귀빈 : 그 의미 좀 설명해 주세요. ◇ 김성근 : 한 3년, 4년 전이었죠. 이산가족의 날을 정부가 이제 제정을 했는데요.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또 1세대들이 돌아가시는 그 와중에 젊은 사람들은 또 그렇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이고, 어쨌든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우리가 다른 어떤 경제공동체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를 진행하기에는 그건 좀 아니다. 특히 이산가족 문제를 지속적으로 이제 기억해야 된다는 그런 의미로 저는 이산가족의 날을 지정한 걸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박귀빈 : 정부가 이산가족의 날을 제정한 그 취지대로 좀 많은 분들께 알려줘야 될 것 같기도 해요. 말씀하셨듯이 요즘에 젊은 세대들은 이미 이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고, 이산가족 상봉한 것도 지금 꽤 오래되지 않았나요? 마지막 상봉이 언제였죠? ◇ 김성근 : 그렇습니다. 2018년 8월 달에 만났으니까요. 8년이 지났습니다. ◆ 박귀빈 : 2018년에 만났다고요? 그러면 지금 꽤 오래된 건데, 그 사이에 몇 번 추진할 시도도 하고 계획도 있었는데 무산이 됐던 건가요? ◇ 김성근 : 그때 2018년도까지만 해도 남북 간의 상황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들을 가졌고, 그 이후에 상봉이 될 수 있겠지 하는 그런 기대가 많았었는데, 그 이후에 아시다시피 남북 관계가 좀 좋지 않았거든요. 바다이야기 방식 그게 쭉 그냥 이어져서 그런 기회들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 박귀빈 : 보통 이산가족 상봉을 하면 TV를 통해서 많이 중계도 되고, 생중계도 되고 뉴스도 많이 나옵니다. 가장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 기억하세요? ◇ 김성근 : 저는 뭐 TV를 통해서 또는 과거의 자료를 통해서 확인했는데요. 1985년도가 첫 상봉이었습니다. ◆ 박귀빈 : 저도 어렸을 때 TV에서 봤던 기억이 언뜻 나고, 그때 정말 눈물바다 되고 했던 그 생중계된 화면이 지금도 생생하거든요. 80년대부터 시작을 했군요. 그럼 꾸준히 80년대부터 몇 년에 한 번씩은 진행을 했던 거예요? ◇ 김성근 : 그러니까 71년도부터 남북 적십자 회담이 진행이 되면서 이산가족 문제를 풀자고 많은 회담이 이루어졌죠. 그런데 실질적인 어떤 성과를 내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었고, 83년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하는 그 방송이 있었고요. 그러면서 국민적 관심이 좀 높아진 상태가 진행이 됐고, 84년도에 우리 쪽에 수해가 났을 때 북한이 그때 자기들도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물자를 도와주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85년도에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가 됐습니다. 이산가족 상봉뿐만 아니라 예술 방문단 교환이라는 이름으로 두 가지가 합쳐 가지고 이루어졌거든요. 근데 85년도 이후에는 한 번도 없다가 이제 2000년도 들어서면서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이산가족은 그때부터 이제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2000년도 이후부터는 1년에 한두 차례 꾸준하게 이제 만나게 됐고요. 그러면서 또 남북 관계가 가다 서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만나기도 하고 또 만나지도 못하게 되고 그런 과정이 이어졌죠. 그러면서 한 3년씩 이렇게 중단된 경우도 있었습니다마는, 최종적으로 2018년도에 문재인 정부 때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면서 그때 마지막으로 만났던 겁니다. ◆ 박귀빈 : 이산가족 상봉을 하게 되면 직접 이제 준비도 하시고 직접 지켜보셨잖아요. 어떤 감정으로 지켜보세요? ◇ 김성근 : 첫 번째 만나는 그 과정이 단체 상봉이라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개별적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모이는 장소에서 한꺼번에 가족을 바로 거기서 만나고 하는데 그때 장면은 잊을 수가 없어요. 저쪽에서 내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걸어오잖아요. 그러면서 얼굴을 이렇게 탁 쳐다보고 확인하고 막 서로 끌어안고 울고 그렇게 하는 장면들을 옆에서 바로 지켜본다는 거는 저희 지켜보는 사람들도 엄청난 충격이었죠. 그러면서 바로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고 좀 이렇게 멈칫멈칫하면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서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과정을 봤습니다. ◆ 박귀빈 :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헤어져 있다가 만나는 거잖아요. 몇 시간 정도 만납니까? ◇ 김성근 : 2박 3일 만나는 게 대부분인데요. 2박 3일을 그대로 다 만나는 건 아니고, 한 2시간 만나고 또 헤어졌다가 또 2시간 만나고 같이 식사도 하고, 또 야외에 나가서 만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한 8번 정도 진행을 합니다. ◆ 박귀빈 : 헤어질 때는 어떠세요? 이산가족분들은요. 10원릴게임 ◇ 김성근 : 헤어질 때는 작별 상봉이라고 하는데요. 근데 이게 정말 만나고 2박 3일이 짧게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까? ◆ 박귀빈 : 금방 지나가죠. ◇ 김성근 : 그러면 다음에 또 만날 수 있다는 그런 기대를 하면 좀 괜찮을 건데, 그때 이제 헤어지게 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하는 그런 것들을 알기 때문에 마지막 작별 상봉 때가 제일 마음이 좀 찡할 때였습니다. 지켜보는 우리도 그렇고 취재하는 분들도 다 눈물 흘리고, 마지막 이때 이제 헤어지게 되면 다시는 못 보는구나 그런 마음으로 서로 막 헤어지지 않으려고 그렇게 하죠. ◆ 박귀빈 : 그 이산가족 만나고 싶다고 상봉 신청을 해서 대상자가 돼야 만날 수 있는 거고, 한 번 만나신 분들은 또 기회가 없는 거죠? 많은 분들이 기다리시니까요. ◇ 김성근 : 네, 왜냐하면 많은 분들이 대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만나는 거는 어렵죠. ◆ 박귀빈 : 그러니까 그 작별이, 2박 3일 동안 만나고 나서 이제 헤어지는 작별 상봉 때가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거라는 걸 다 아시는 거예요. 지금 마음이 너무, 저도 막 먹먹해지는데 생존자분들이 지금 3만 2천여 분 계신데요. 그리고 거의 다 이제 고령자이십니다.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는 훨씬 더 많으셨죠? ◇ 김성근 : 예, 한 13만 명 정도가 되는데요. 제가 10년 전에 한참 일을 할 때 보니까 그중에서 절반 정도가 살아 계셨거든요. 그러니까 한 6만 4천 명 정도가 10년 전에 살아 계셨는데, 최근의 통계를 보니까 그게 또 절반으로 줄었어요. 지금 3만 2천 명 정도가 생존해 계신단 말이죠. 그런데 대부분 이제 80세 이상이고 그분들은 말이 80세 이상이지만, 직접 이렇게 상봉을 하게 되면 가서 만나야 되는데 몸이 이제 건강해야 만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만나서 이렇게 걸어가면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정도로 아마 몸도 좀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 박귀빈 : 맞습니다. 사실 이산가족 문제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너무 가장 필요한 첫 번째 일이라고 한다면 이게 굉장히 어렵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산가족 상봉 말고 이산가족 문제를 또 다른 좀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실제로 대표님도 그런 방식이 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 김성근 : 그러니까 남북 간에 어떤 계기가 되면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가 나오고, 그러면 상봉에만 이제 집중을 하는 거죠. 약간 이벤트 같은 그런 느낌으로 울고불고하는 그런 것만 이제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상봉을 하는 것 자체도 물론 좋고 뭐 더 나아가서 고향까지 방문하면 좋겠죠. 근데 현실적인 여건이 또 그렇게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저는 접근 방식을 좀 바꾸자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나면 더 좋겠죠. 그렇지만 내 가족이 좀 어떻게 돼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 박귀빈 : 생사 확인이라고... ◇ 김성근 : 그렇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라도 좀 확인하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니까 생사 확인이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니까 그것부터 시작을 하는 게 좋겠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생사가 확인이 되면 그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거든요. 릴게임빅뱅 서신 교환도 할 수도 있고 또 화상으로도 만날 수 있고 영상 편지 찍었던 거 보낼 수도 있고, 또 여건이 되면 상봉까지도 이제 이어지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이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해야 될 거는 저는 생사 확인이 가장 우선적인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박귀빈 : 지금 현실적으로 생사 확인도 조금 어려운 편인가요? ◇ 김성근 : 여전히 북측은 좀 어려워하죠. 그때 우리가 남북 적십자 회담을 하면서 시범적으로 생사 확인 두 차례 한 게 전부거든요. 그때 생존자 전체 명단을 가지고 생사 확인을 하자 그렇게 한 적도 있는데, 뭐 상봉에 집중하다 보니까 그거는 뭐 다음에 좀 여건이 나아지면 하자는 쪽으로 미뤄놓은 그런 상태거든요. 그래서 상봉이 어렵다 그러면 생사 확인부터 시작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박귀빈 : 근데 뭐 어떤 방식이든 다 북한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데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 김성근 : 그렇죠. 지금은 남북 관계가 워낙 단절돼 있는 상태고 판문。에 있는 연락 채널까지도 끊어져 있는 그런 상태란 말이죠. 그래서 가장 먼저 연락 채널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고요. 그렇게 되면 여건이 좀 나아지게 되면 다른 건 몰라도 생사 확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박귀빈 :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우리 정부에서 좀 노력해야 될 부분은 뭘까요? ◇ 김성근 : 그러니까 신뢰를 좀 회복하는 과정들이 필요하죠. 계속 이대로 가다가는 이제 서로 쌓여 있는 이 감정들, 마음들을 풀기가 좀 어렵거든요. 서로 지속적인 그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들을 진행을 하다 보면 서로 이해하게 되고, 또 우리는 또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를 합니다. ◆ 박귀빈 : 34년 동안 남북 대화 현장을 그대로 지켜보셨습니다. 실제 실무자이시기도 하고 대표가 되셔서 남북을 오가기도 하셨는데, 지금의 남북 관계에서 무엇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까, 가장 먼저 뭐부터 손봐야 될까, 뭘까요? ◇ 김성근 : 지금 뭐 이러다 보면 이산가족 문제보다도 더 이제 시급한 일들이 사실은 많이 있거든요. 지금 우발적으로 어떤 상황이 또 터질지 모르는 그런 상황들을 관리해야 되는 부분이 있고요. 그런 부분들에 더해서 또 우리 남북 주민들에게 필요한 그런 일들은 여전히 많을 거라고 봅니다. 재난 재해라든지 또 감염병이라든지 또 보건의료라든지 서로에게 필요한 일들은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그 과정에서도 이산가족 문제도 또 포함해 가지고 상봉도 이루어질 수 있는 거고, 그런 노력들을 좀 큰 걸 해결하기보다는 가장 작은 것부터 시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실제로 그렇게 해 나가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박귀빈 : 실제로 인도적인 차원에서 좀 따로 해야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지금도 북한이 탄도미사일 쏘고 이제 이러다 보니까 국가 안보와 정책적인 부분이 일단 당연히 우선적으로 필요하니까 그런 대비도 해야 되겠지만, 이산가족 이건 정말 우리 삶에 대한 어떤 인도적인 부분이다 보니까 이것도 따로 좀 같이 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 지금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고요. 최근에 펴내신 책에 보면 <판문.에서 금강산까지>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내셨거든요. 모바일 릴게임 먹튀 어떤 내용을 담으신 거예요? ◇ 김성근 : 네, 제가 그동안에 이제 34년 동안 일을 하면서 현장에 있었거든요. 현장에서 좀 전에도 말을 했지만 적십자 회담이 열리게 되면 이제 짧은 회담 기간에서 또 합의가 이루어지고, 합의 내용을 보면 뭐 간단한 몇 줄에 불과하지만 그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여러 가지 과정들도 복잡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해서 그게 이루어진단 말이죠. 그래서 판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또 그게 이제 진행이 되면 이산가족 상봉이 일어나니까 상봉 과정에서 여러 가지 또 이야기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들, 그걸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 다 잊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34년 동안 걸어왔던 이야기들, 그게 <판문。에서 금강산까지> 쭉 여정을 하나의 기록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머릿속에, 늘 가슴속에 담겨 있으셨겠지만 이번에 책을 쓰시면서 다시 한번 정리하셨을 것 같아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어떤 장면이 있으면 짧게 소개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 김성근 : 그때 50년간 수절을 하다가 남편을 금강산에서 만났던 정기엽 할머니가 생각이 나는데요. 그때 보니까 혼자서 이제 살았기 때문에 50년 만에 처음 만났고, 남편하고 알콩달콩 이제 잘 지내다가 2박 3일 끝나고 이제 헤어지는 시간에 저쪽에 있는 남편이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통일될 때까지 그때까지 기다리라"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아니, 나랑 같이 서울에 가서 살면 안 되겠느냐" 그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게 안 된다 그러니까 "아이고, 어떡하느냐고. 통일이 언제 되느냐고, 언제 통일이 되느냐고" 그렇게 막 울먹이던 그 장면이 지금도, 아직도 생생합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 한 분 한 분 다 그 가슴 저미는 사연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참 지금도 정말 많은 이산가족분들이 남에서 북에서 얼마나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실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너무 가슴이 먹먹해지고, 여러분, 9월 23일 이산가족의 날입니다. 아직 가족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 김성근 : 힘드시겠지만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기회가 올 거고, 이 문제는 인도적인 문제니까 꼭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 박귀빈 : 건강하게 꼭 그날을 기다리면서 계셔주셨으면 좋겠고, 또 지금 이산가족 문제 자체가 좀 。。 낯설게 느껴지는 젊은 세대들도 있거든요. 젊은 세대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김성근 : 어떻게 보면 이 문제가 내 문제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 모두의 문제다. 분단 이재민들에 관련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통일될 때까지는 이 문제를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외면하다 보면 이 문제는 이제 처리가 뒤로 넘어가게 되고 그러는데, 서로 같이 힘을 모아서 항상 기억하고 또 격려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 박귀빈 : 네, 맞습니다. 아무리 젊은 우리 세대라도 사실은 집에 보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어쩌면 나랑 굉장히 가까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좀 다 기억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성근 전 남북 적십자 회담 대표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성근 : 네, 감사합니다. YTN 이시은 () 거든요.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