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생명 일원역빌딩에서 진행된 ‘휴머노이드 수술 보조 로봇’ 시연회에서 로봇 3대가 염소 간으로 모의 담낭 절제술을 시행하고 있다. 한 대는 오남기(맨 오른쪽)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가 원격 조작해 절개·박리·봉합을 하고, 두 대는 수술 기구 전달과 내시경 조작 등으로 수술을 보조했다. /박성원 기자
“가까이, 아래로…” “‘그래스퍼(집게 형태 수술 기구)’ 주세요.”
지난 16일 오후 4시쯤 서울 강남구 삼성생명 일원역빌딩에 마련된 모의 수술실. 집도의인 오남기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가 말하자, 파란 수술 가운을 입고 양옆에 서 있던 키 140㎝, 무게 130~170㎏의 수술 보조 로봇들이 두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호사 역할을 맡은 로봇은 카메라로 수술대 위 여러 도구 중 그래스퍼를 찾아 집은 다음 손잡이 부분이 앞을 향하도록 오 교수에게 건넸다. 보조 의사 역할 로봇은 오 교수 지시에 따라 한쪽 팔로 복강경 내시경을 움직이고, 다른 팔로는 조직을 잡아당겨 수술 부위를 드러냈다. 수술 시작 10분쯤 뒤 시연 중계자가 “담낭이 완전히 절제됐습니다”라고 하자, 지켜보던 취재진과 관계자 100여 명 사이에서 박수가 나왔다.
이날 담낭 절제술은 사람이나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닌 염소 간을 이용한 모의 수술이었지만, 집도의 한 명과 수술 보조 로봇 두 대가 역할을 나눠 하나의 수술팀으로 협업하는 모습을 구현한 세계 최초의 시연이었다.
연구진은 이날 지난 14개월간 개발해 온 ‘휴머노이드 수술 보조 로봇’을 처음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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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는 사람의 신체 구조와 움직임을 본뜬 로봇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작년 7월 보건의료 국책 과제인 ‘한국형 ARPA-H’ 주관 기관에 선정돼 로봇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등과 컨소시엄을 꾸려 휴머노이드 수술 보조 로봇을 개발 중이다. 이번 시연은 중간 성과를 공개하는 자리로, 로봇 3대(한 대는 의사가 원격 조종)의 수술 시연, 집도의와 로봇 2대의 수술 시연이 차례로 이어졌다.
삼성서울병원 측은 “수술 로봇이 특정 동작을 고도화하는 데 초.을 맞추고 있는 해외와 달리 우리는 여러 로봇이 수술 맥락을 공유하며 의료진과 원팀으로 협업하는 시스템을 구현하려 한다”고 했다. 다빈치 같은 기존 수술 로봇과도 다르다. 다빈치는 의사가 수술대에서 떨어져 로봇을 직접 조종하는 정밀 수술 도구지만, 이 휴머노이드 수술 보조 로봇은 기존 수술실에 사람 대신 들어가 사람이 쓰던 기구를 그대로 쓰며 집도의와 협업한다. 연구 책임자인 정용기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기존 수술실 구조나 도구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로봇에는 다양한 기술이 접목됐다. 바퀴형이면서 몸체를 굽히거나 회전해 작업 높이·자세를 조절할 수 있고, 한 팔로 3㎏까지 들 수 있다. 카메라·센서가 로봇의 ‘눈’, 음성 인식 기술이 ‘귀’라면, 이를 종합해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는 AI가 ‘두뇌’ 역할을 한다.
로봇이 “가위 주세요” 같은 음성 지시를 인식해 움직이기까지 2초가 채 안 걸린다. 의사가 가위를 내밀면 다시 받아 제자리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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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측에 따르면, 수술 도구 5종을 집는 데는 100%, 의사에게 전달하는 데는 98.7%의 성공률을 보였다. 또 로봇이 내시경을 잡고 시야를 확보할 때 수술 도구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추적해 내시경 위치를 자동 조정하는 ‘비주얼 서보잉(Visual Servoing)’ 기술도 적용됐다.
연구진은 이 로봇이 수술실 인력난의 보완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술엔 집도의를 몇 시간씩 보조할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데, 지방·중소 병원뿐 아니라 대형 병원도 야간 응급 수술 등에 투입할 보조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용기 교수는 “휴머노이드가 대신해주면 집도의가 좀 더 편안하게 수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아직은 현재 기능도 검증·시험하는 단계로, 상용화까지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로봇이 조직을 너무 세거나 약하게 당기진 않는지 등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고, 로봇이 잘못 작동해 환자가 다쳤을 때 누가 책임질지 등도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번 연구 프로젝트는 올해 말 다른 프로젝트들과 경쟁 평가를 거쳐 최종 선정되면 2029년 말까지 정부 사업비 총 138억원을 지원받는다. 이를 통해 수술 보조 로봇 상용화를 완성하고, 2029년 담낭 절제술과 뇌하수체 종양(뇌 아래 호르몬 분비 기관에 생긴 종양) 절제술 등을 대상으로 첫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것이 연구진의 목표다. 집도의가 “가위 주세요”라고 말하기 전에 로봇이 알아서 가위를 준비하는 단계까지 만들기 위한 기술 등도 개발 중이다. 정 교수는 “수술 보조 로봇은 정교한 술기를 가진 의료진과 우수한 로봇·AI 연구자가 있는 한국이 앞설 수 있는 분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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