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들섬에 펼쳐진 광복 80주년 기념 태극기 프로젝트 <독립, 너의 미래를 위해서였다>를 기억한다. 그리고 내년이면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해를 맞는다. 1937년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지 90년이 된다.
광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과 조국의 해방을 기다렸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시대에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광복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채 머나먼 타국에서 삶을 이어가야 했던 이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
▲ ?키르기스스탄에서 진행된 연극 '극장은 달린다' 공연 장면
ⓒ 서울문화재단
1937년 8월 21일 소련 당국의 강제이주 명령이 내려졌다. 연해주를 비롯한 극동지역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옮겨졌다. 객차가 아닌 화물열차에 몸을 싣고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낯선 땅에 도착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일구었다.
시간이 흘러 1세대는 2세대가 되고 어느덧 4세대에 이르렀다. 언어도 국적도 달라졌다. 중앙아시아는 이제 그들에게 '타향'이라고만 할 수 없는 삶의 터전이 됐다. 그렇다고 그들의 역사가 우리와 완전히 분리됐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2년간 서울과 중앙아시아를 오간 공연을 지켜보며 이 질문을 자주 떠올렸다.
지난해 서울문화재단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카자흐스탄 국립 아카데미 고려극장과 함께 <열차 37호>를 만들었다
모바일 레알야마토
. 1937년 강제이주와 고려극장의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서울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출발한 공연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이어졌다.
특히 의미 있는 .은 한국에서 만든 공연을 단순히 해외에 가져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려극장 배우들과 국내 창작진이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고려인의 역사를 우리가 대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이어온 사람들과 함께 무대 위에서 풀어냈다.
올해 광복 81주년에도 이 흐름은 끊기지 않았다. 바통을 이어받은 작품은 <극장은 달린다!>였다.
이번에는 1932년 연해주 신한촌에서 시작된 고려극장의 역사가 중심에 놓였다. 강제이주 속에서도 배우들은 무대를 버리지 않았다. 삶의 터전을 잃어도 대본과 의상, 악기와 소품을 품고 이동했다. 그들에게 극장은 건물만을 뜻하지 않았다. 우리말과 노래, 이야기와 공동체의 기억을 지키는 공간이었다.
공연은 제목처럼 실제로 달렸다. 서울 대학로를 출발해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카자흐스탄 아스타나까지 이어졌다. 서울을 포함한 4개국에서 다섯 차례 공연이 열렸고 2,800명이 넘는 관객이 객석을 채웠다. 모든 공연이 매진됐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2,800명이나 '전석 매진'이라는 보이는 성과가 전부는 아니다.
지난해 <열차 37호>에 이어 올해는 <극장은 달린다!>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릴게임매장
. 한 차례의 기념행사에 멈추지 않고 2년 동안 같은 방향의 교류를 이어왔다는 .이 더 중요하다.
'국제문화교류'라고 하면 흔히 우리의 우수한 콘텐츠를 해외에 알리는 일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와의 교류는 조금 달리 볼 필요가 있다. 그곳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러 가는 곳인 동시에, 우리가 오랫동안 충분히 기억하지 못했던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만나러 가는 곳이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는 지금도 많은 고려인 후손들이 살아간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와 국적이 달라졌다고 해서 역사적 뿌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왜 한국을 잊었느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기억해왔는가"
▲ ?우즈베키스탄에서 진행된 연극 '극장은 달린다' 공연 장면
ⓒ 서울문화재단
고려인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들을 과거의 비극 속에만 머물게 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사회와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우리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해온 공동체라는 사실을 함께 기억하는 일이다.
예술은 바로 그 사이를 연결한다. 역사의 연도와 숫자는 책에서 배울 수 있지만, 화물열차에 몸을 실었던 사람의 두려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낯선 땅에서 다시 공동체를 만들었던 마음까지 숫자로 전달하기는 어렵다. 그것을 오늘의 감각으로 불러오는 것이 이야기이고 노래이며 연극이다.
레드스핀
마침 대한민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의 관계도 새로운 전환.을 맞고 있다. 오는 16일, 서울에서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열리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국가 차원의 외교와 경제협력이 확대되고 중앙아시아와의 관계가 한 단계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보다 앞서 지난 2년간 서울이 예술을 통해 고려인을 꾸준히 기억해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지난해에는 강제이주의 기억을 무대에 올렸고, 올해는 고려극장의 역사를 따라 중앙아시아 3개국을 찾았다. 국가 간 외교가 제도와 협약으로 관계의 틀을 만든다면, 문화예술은 그 관계에 사람의 얼굴과 기억을 더한다. 더구나 내년은 고려인 강제이주 90주년이 아닌가.
90주년이라는 숫자에 맞춘 일회성 기념행사보다 중요한 것은 지난 2년간 만들어온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다. 서울과 중앙아시아 예술가들이 다시 만나고, 고려인 청년세대와 한국의 청년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교류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광복을 기억한다는 것은 1945년 8월 15일의 환희만을 되새기는 일이 아니다.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해방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했던 사람들, 먼 이국에서 삶과 문화를 지켜온 사람들까지 우리의 역사 안에서 기억하는 일이어야 한다.
올해 국가 외교가 중앙아시아를 향해 새로운 문을 연다면, 내년에는 예술이 다시 그 길을 달리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는 어쩌면 긴 말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올해 우즈베키스탄 공연을 마친 뒤 한 고려인 관객이 공연팀에 건넨 말이 오래 남는다.
"여기까지 와서 우리 이야기를 공연해줘서 고맙습니다."
rong>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