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오픈 웨이트와 미국의 AI 리더십’. A4 3장 남짓 분량의 공개서한에 서명한 미국 기업만 230여개 업체. 이들의 시가총액을 합산하면 20조~30조달러를 웃돈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오픈AI와 같은 빅테크부터 비영리조직(리눅스재단)과 투자사(Y 컴비네이터)에 이르기까지 미국 혁신 생태계를 대표하는 기업과 기관이 총망라됐다. 단 한 곳 ‘클로드’의 앤트로픽만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 서한의 수신처는 워싱턴, 즉 미국 정부다. 오픈소스 AI 모델, 정확히는 오픈 웨이트 AI 모델에 대한 규제를 재검토하라는 요구다. 최근 미국 정부가 키미 K3와 같은 중국발 오픈 웨이트 모델에 대한 제재 방침을 명확히 하자 기술 기업들이 이례적으로 함께 뭉친 것이다. 이들의 논리는 하나로 모인다. “폐쇄형 모델만 사용하는 것이 본질에서 더 안전한 것은 아니다.”
새 범용 혁신 기술이 공개될 때마다 오픈소스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리눅스가 오픈소스로 공개됐을 때, 파이썬이 확산할 때, 암호화 소프트웨어인 PGP가 누구나 접근 가능해졌을 때 같은 풍경이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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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마다 정부나 기득권 기업들은 “테러리스트나 해커에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991년 PGP 개발자 필 짐머만은 기소되기까지 했다. 전략 무기 수출 통제법 위반 혐의였다.
오픈 웨이트 AI 모델이란 AI 모델의 실행 프로그램과 그 출력을 좌우하는 가중치 파일까지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는 형태로 공개된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이 파일을 내려받아 설치하면 누구나 자신만의 AI 모델을 가질 수 있고, 용도에 맞게 직접 튜닝도 할 수 있다. 다만 학습 데이터세트까지 공개되는 것은 아니어서 진정한 의미의 오픈소스로 평가받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지금 이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은 가중치 공개만으로도 기술 접근성의 판도를 뒤흔들 만큼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역사가 증명하듯, 대부분의 우려는 사회적 유익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악용과 남용의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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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술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을 획득할 수 있었고, 기술 독。을 완화하며 가격 상승도 방지할 수 있었다. 지금의 카카오톡 보안도 PGP 기술의 개방이 없었다면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AI는 경제적 가치를 만드는 하나의 생산수단이 됐다. 문제는 이 생산수단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있다는 데 있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의 독.이 노동의 종속과 부의 집중을 낳는다고 봤다. 오늘날 AI가 지식노동의 핵심 생산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면, 고성능 AI를 몇몇 기업이 독。하는 구조 역시 새로운 형태의 생산수단 집중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오픈 웨이트 모델은 AI라는 생산수단에 대한 접근권을 시민과 개발자에게 돌려주려는 시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오픈 웨이트를 막는 것이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이미 생산수단을 움켜쥔 소수의 기업을 규제의 이름으로 보호하려는 작업인가. 미국 정부가 기술 통제와 안보를 내세워 오픈 웨이트를 옥죌 때, 실제로 위축되는 것은 테러 위험이 아니라 AI 기술의 민주화다. 이번 서한은 결국 이 규제가 누구에게 힘을 실어주려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성규 블루닷에이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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