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9일 서울 잠수교 남단에서 '달리는 변호사 모임(달변)' 회원들이 대회를 앞두고 연습에 나서기 전 몸을 풀고 있다. 왼쪽부터 박성원, 이영석, 김관기 변호사. 세 사람은 서울대 법대 동기다. 백성현 기자
"비가 많이 와 양재천이 잠기면 둑방으로 올라가서 뛰었어요. 비가 온다고 월례 달리기를 쉰 적은 없습니다. 눈이 막 내린?뒤에 뛰면 오히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서 좋아요."
서울지방변호사회 마라톤 동호회 '달리는 변호사 모임(달변)'은 25년 동안 '삼폭불문' 원칙을 지켜왔다. 폭염과 폭우, 폭설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달변 회원들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양재천에 모인다. 2026년에도 한 번?거르지 않고 매달 달렸다.
달변은 2001년 출범했다. 양경석(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가 서울변회에 제안해 회 공지망으로 회원을 모집하는 등 창립 실무를 주도했고, 고(故) 황의채(13기) 변호사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당시 불었던 마라톤 열풍에 힘입어 37명이?참여했다. 현재 단체 대화방에는 약 110명의 회원이 있다. 30대부터 8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주요 훈련 장소는 양재천이다. 과천 방향으로 달리는 날에는 관문체육공원까지 갔다 돌아오는 약 13㎞ 코스를 뛴다.
야마토게임하기
잠실 방향으로 향하면 잠실대교까지 왕복 약 18㎞를 달리고, 장거리 훈련 때는 강동대교까지 갔다 돌아오는 30㎞가 넘는 코스도 소화한다. 폭염이 이어지는 6~8월에는 그늘이 많은 남산으로 장소를 옮겨 오전에 뛰기도 했다.
달변은 매년 공식 마라톤 대회에도 단체로 참가해왔다. 많을 때는 관광버스를 빌려 약 30명이 함께 대회장을 찾기도 했다.
25년 역사만큼 회원들의 기록도 상당하다. 창립 멤버인 양경석 변호사는 풀코스를 44차례 완주했고, 그중 춘천마라톤에서만 20차례 결승선을 통과했다. 100㎞ 울트라마라톤을 한 달에 세 차례 뛴?회원도 있다.
마라톤은 회원들의 가족까지 연결했다. 부부가 함께 대회에 나가거나 회원의 자녀가 월례 달리기에 함께하는 식이다. 원로 회원들 일부는 직접 뛰지?않더라도 달리기가 끝난 뒤 식사 자리에 꼭 참석한다.
이들이 이번에는 법률신문이 주최하는 아·태 사법정의 허브 마라톤 대회 '저스티스 런 서초 2026(JUSTICE RUN SEOCHO 2026)'에 나선다. 회원 20명 참가를 예정하고 있다.
회원들은 저스티스 런 개최 소식이 반가웠다고 했다. 이영석(16기) 회장은 "법조인들이 함께 뛸 자리가 만들어졌다는 .에서 좋은 일이다"라며 "최대한 많이 참가하자는 얘기가 동호회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네임드 달팽이
저스티스 런 5㎞와 10㎞ 코스는 모두 반포한강공원 달빛광장에서 출발해 서초동 법조타운을 지난다. 서초역 사거리에서는 수령 약 900년의 향나무 '천년향'을 만난다. 법조인의 청렴성과 사법정의의 가치를 담은 '아시아·태평양 사법정의 허브'의 상징이다.
대법원과 대검찰청, 서울지방변호사회관 등이 자리한 구간을 지나면서 법원·검찰·변호사로 대표되는 '법조삼륜'의 공간도 잇는다.
김관기(20기) 변호사는 "예전보다 법조인 숫자는 훨씬 많아졌지만 서로 생각을 나누고 소통할 기회는 오히려 부족해진 것 같다. 이번 대회처럼 모이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달변 회원들은 "끝나고 나서가 시작이죠. 뛰고 나서 퍼질러 앉아?이야기하는 시간이 제일 좋습니다. 그렇게 만나고 이야기하는 게 가장 좋은 소통 아닐까요"라고 했다.
달변 회원들은 법조가 큰?변화를 겪는 지금,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법조인들이 함께 달리는 데 의미가 있다고도 했다.?박성원(17기) 변호사는 "법관과 검사, 변호사는 역할이 다르고 때로는 서로 견제하지만 이번에는 한자리에 모여 같은 길을 달린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법은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규칙이고, 법조인은 그 규칙과 절차적 정의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바로잡겠다고 생각만 하는 것보다 직접 몸을 움직이고 달리면서 정신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년의 향나무 '천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