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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6-09-19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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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인왕사지 전경 경주시 제공 신라 왕궁 월성을 휘돌아 흐르는 문천 건너 월정교와 지척에 천년의 절터가 있다. 경주 인왕동 사지다. 월정교와 춘양교 사이에 자리한 이곳에는 두 탑을 거느린 큰 절이 있었다. 왕궁과 가까운 신라왕경의 핵심 공간이다. 그러나 정작 신라인들이 이 절을 무엇이라 불렀는지는 알지 못한다. 한때는 '인용사(仁容寺)'로 여겼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인용사는 태종무열왕의 아들 김인문과 관련된 사찰이다. 이곳이 인용사 터라는 견해에 따라 오랫동안 '인용사지'라 불렸고, 1991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될 때도 그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나 발굴은 그 이름을 확인해 주지 못했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네 차례 조사가 이어졌다. 땅속에서는 중문과 금당, 강당, 회랑과 동·서 두 탑의 자리가 드러났다. 규모와 격식을 갖춘 사찰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분명해졌지만 이곳이 인용사였음을 확정할 결정적인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땅은 더 복잡한 시간을 보여줬다. 6세기 말에서 7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는 와축기단 건물지가 확인됐고 뒤이어 목탑과 금당, 동·서 두 석탑을 갖춘 가람의 흔적이 시대를 달리해 나타났다. 하나의 땅 위에 서로 다른 시간이 포개져 있었다. 모바일 온라인야마토게임 절의 이름을 찾으려 땅을 팠는데 하나의 답 대신 더 많은 질문을 얻었다. 결국 2016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될 때 '인용사지'라는 이름은 채택되지 않았다. 인용사라고 단정할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신 현재의 지명을 따라 '경주 인왕동 사지'가 됐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 이름이다. 그런데 절의 이름은 찾지 못했지만 탑을 장엄했던 팔부중상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인왕동 사지의 동·서 석탑 상층기단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었다. 출토된 팔부중상 면석 가운데 4매는 국립중앙박물관, 1매는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가 소장해 왔다.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중앙박물관 소장 4매는 올해 중 석탑 복원 현장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경주시는 남아 있는 석탑 부재와 팔부중상 면석 등을 토대로 동·서 석탑을 본래 위치에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경주 인왕동사지 보존복원 현황과 향후 과제' 학술대회도 이 절터를 다시 바라보는 자리였다.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탑은 무너졌고 돌은 흩어졌다. 그 돌에 새겨진 팔부중상도 절터를 떠났다. 이제 흩어진 석탑 부재를 모아 천년 전 두 탑의 모습을 되찾으려 한다. 돌은 돌아올 수 있다. 모바일 바다이야기 다운로드 그러나 이름은 그렇게 돌아오지 않는다. 오랫동안 인용사라고 불렀다는 사실만으로 이곳이 인용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땅속에서 나온 돌과 기단은 천년 전의 시간을 증언하지만 어느 것도 아직 절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월성 건너 남산으로 이어지는 왕경의 한복판. 누가 이곳에 이처럼 큰 절을 세웠을까. 왜 이 자리였을까. 목탑이 서고 다시 두 석탑이 들어서는 동안 이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드나들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이 절을 무엇이라 불렀을까. 인용사였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천년 전 왕경을 오가던 사람들은 이 절의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불렀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했던 그 몇 글자가 천년을 건너오지 못했다. 사람은 사라지고 건물은 무너졌다. 이름도 잊혔다. 그런데 돌은 남았다. 땅속에서 기단이 나오고 탑의 자리가 드러났다. 흩어졌던 팔부중의 얼굴도 제자리를 향한다. 그렇게 천년 전의 절은 조금씩 모습을 되찾는다. 이름 하나만 비어 있다. 그 빈자리를 서둘러 한 이름으로 채우지 않는 것. 어쩌면 지금 우리가 천년 전 이 절에 돌려줄 수 있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 빈자리인지도 모른다. 문천은 여전히 월성 아래를 흐른다. 그 물 건너 오래된 절터에 두 탑이 다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천년 전 지켰던 절의 이름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석탑을 본래 위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