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 교수인 앤서니 베일은 신간 '중세의 여행자들'에서 중세 후기 여행자들의 기록을 따라가며 당시의 문화와 역사를 풀어놓는다.
1300∼1500년 유럽은 여행의 문화와 기술이 역동적으로 꽃피던 시기였다. 책은 당시 여행안내서와 순례기, 상인들의 기록, 지도 등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중세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상상했는지를 보여준다.
책에서 중세 여행자들의 여정은 최초의 지구본이라고 불리는 항해가 마르틴 베하임의 지구본이 제작된 뉘른베르크에서 출발해 베네치아와 로마,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페르시아와 인도 등으로 이어진다.
그 여행에는 순례자와 상인, 수도사와 학자, 외교관, 모험가 등이 등장한다.
중세 시대 서양에서 지배적인 여행 형태는 종교적 목적을 띤 순례였고, 십자군 원정이나 무역을 동기로 한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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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다는 드물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지식을 추구하려 길을 나선 사람들도 존재했다.
중세인들은 낯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와 신앙, 지식을 동원했고, 그 과정에서 사실과 상상, 진실과 거짓이 뒤섞였다.
예컨대 1490년대 초 만들어진 베하임의 지구본은 약 2천개의 지명과 100개의 삽화, 50개가 넘는 긴 설명문을 담고 있는데, 거기에 그려진 대륙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단 세 개뿐이다. 이 지구본에서 유럽의 형태는 오늘날에도 알아볼 만한 수준이지만, 한편으로는 인도 동쪽의 한 제도에는 사람이 개의 머리를 하고 있다는 전설 속 이야기 같은 설명이 적혀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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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러한 오류들은 중세 유럽인들이 지구에 대해 잘 몰랐다는 .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수백 년에 걸쳐 세계의 형태와 세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이로운 것들을 탐구해왔다는 .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베하임의 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달할 수 있는 지역이 있으며, 그곳은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고 서양과 무역하길 기다리는 사람이 가득할지도 모른다고 널리 여겼다."
저자는 또 중세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떠나 여행이라는 경험이 갖는 보편성을 드러낸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행자는 어쩐지 변한다. 급진적인 차이와 놀라운 유사성과 마주한 뒤 고향에서의 삶과 이전의 앎이 새로 드러나면서 여행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슬기로워진다. 여행은 우리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지구의 다양성과 불가지(不可知) 속에서 인간의 미미함을 마주하게 한다."
서해문집. 최파일 옮김. 5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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