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 남양성모성지에는 스위스 건축 거장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붉은 벽돌 대성당이 서 있다. 그 옆에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페터 춤토르가 온다. ‘건축가의 건축가’로 불리는 춤토르가 이곳을 처음 찾은 때는 2014년. 그가 ‘티 채플’을 제안한지 1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 건물은 착공하지 못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멈춰 있던 일은 올 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KCC정보통신 이주용 명예회장 부부가 건립비 100억원을 기부하면서다. 최근 스위스에서 춤토르를 만나고 온 이상각 남양성모성지 전담 신부는 2028년 6월로 완공 일정을 다짐하고 돌아왔다. “그때까지 끝내자고 했어요. 제가 그해 12월이면 은퇴하거든요.” 완공되면 춤토르가 아시아에 남기는 유일한 건축물이 된다.
이 신부가 춤토르를 처음 만난 것은 2012년이었다. 보타의 소개였다. 순례길 끝에 작은 경당 하나를 지어달라고 했다. 2년 뒤 남양을 찾은 춤토르는 경당 대신 차를 마시는 집을 제안했다. 이미 종교적 이야기가 충분히 많은 곳에 또 하나의 종교 건축물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티 채플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 신부가 남양에 온 것은 1989년이었다. 작은 조립식 경당 외에 이렇다할 것이 없었다. “앞으로 성지에서 뭔가를 하려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알려면 가서 봐야 했고요.” 건축가들의 해외 건축기행에 무작정 따라나섰다. 르 코르뷔지에, 알바 알토의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건축에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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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토르가 지은 스위스 발스 온천에서 그는 느꼈다. 건축이 사람을 위로할 수도 있구나. “내가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고 싶었지요.”
남양성모성지에는 보타와 춤토르의 작품만이 아니라 승효상의 ‘순교자의 언덕’, 이동준이 설계하는 ‘엔드리스 성요셉 예술원’도 공사중이다. 예술원에는 전시장과 블랙박스 극장이 들어선다. 순교자의 언덕은 땅 속으로 200m 넘게 이어지는 길이다. 두 곳 모두 내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완공을 서두르고 있다.
티 채플 건립을 다시 움직이게 한 100억원 기부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동안 성지 조성의 바탕은 순례자들의 작은 후원이었다. “어떤 날은 한명, 어떤 날은 다섯 명, 아무도 없는 날도 있었어요. 한달에 2만원을 꾸준히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분들이 있다는 게 기적이에요. 그분들에 의해 여기까지 온 거죠.”
대성당 제대 위에는 21세기 미켈란젤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줄리아노 반지의 ‘십자고상’과 ‘최후의 만찬’이 걸려 있다. 이상각 신부는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피아노 연주 도중 ‘최후의 만찬’을 바라보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경은 선임기자
대성당을 설계할 때부터 보타와 소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 리노베이션을 이끌기도 했던 보타는 “성당을 원하는 거냐, 음악당을 원하는 거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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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부는 “첫번째도 두번째도 성당”이라면서 “이렇게 좋은 공간을 짓고 미사만 드리고 문을 닫아놓는 건 아니다. 사람을 위한 일이 이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대성당은 클래식 무대로 열렸다. 최근 몇년 사이 서울시향을 비롯해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피아니스트 김정원, 손민수 등이 이곳에서 연주했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뜻을 먼저 전해오는 연주자들도 많았다. 다음달 11일부터 열리는 클래식 음악제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무대, 국립합창단과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가 주페의 ‘레퀴엠’을 국내 초연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유수의 음악가들이 거쳐갔지만 그중에서도 이 신부는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무대가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연주 도중 대성당 제대 위 ‘최후의 만찬’을 바라보던 그의 표정이 잊히지가 않아요. 소리도 좋았지만 그 표정이 저에게는 정말 감동이었어요.” 말을 잇던 그는 잠시 멈춰 눈가를 훔쳤다.
이 신부에게 예술은 사람과 성당 사이에 놓는 다리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예술의 힘을 이야기하셨다”면서 “저는 남양성모성지가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음악을 들으러, 건축물을 보러 왔다가 난생 처음 성당 문을 넘는 이들도 많다. 지친 사람들이 쉬고 가는 곳,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편히 찾아올 수 있는 곳. “사람은 품어주고 위로해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그가 이곳에서 건네고 싶은 것도 그런 위로다.
“이곳에 오신 분들이 돌아갈 때는 올 때보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으면 좋겠어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하느님이 하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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