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니 꽤 오래전 일이다. 딸아이 반 부모들끼리 종종 모였는데 어느 날 한 아버지가 새로 개장한 7080 카페에 가자고 선동했다. 후배가 사장님이고 좋은 술도 제공해 준다는 꼬드김이었다. 덕분에 10월 하순의 어느 날 밤, 예정에 없던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사장님이 뜻밖의 '특별 게스트'를 예고했다. "좀 있으면 10월의 마지막 날 아니겠습니까." 사장님의 멘트에 우리 일행 모두가 움찔했다. "설마, 이용?"
정말 이용이었다. <잊혀진 계절>의 이용이었다. 다른 자리의 아주머니들은 10대 소녀로 돌아간 듯 괴성을 질렀다. '오빠~~~'. 그러나 그 오빠는 내 삼촌처럼 생긴 오랑캐꽃 아저씨로 돌아와 우리 앞에 섰다. 1957년생이니 당시 50대 중반이었겠지만 왕년의 '슈퍼스타'를 실물로 영접하는 감회는 컸다. "<잊혀진 계절>이 판매고 35만 장이라는 경이의 기록을 세우는데 힘입어... 단숨에 정상의 언덕에 오른"(<동아일보> 1982년 12월 20일) 그의 모습은 모두에게 생생했다. 동시에 생경했다.
"와 진짜 이용이다."
▲ ?1980년대의 가수 이용
ⓒ 이용TV 유튜브
그의 첫 노래는 <바람이려오>였다. 이 노래가 나온 1981년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고 전두환이 제12대 대통령으로 등극한 해였다. 정통성 없는 정권일수록 화려한 이벤트를 좋아하게 마련인데 당시 전두환 정권의 실세 '3허(許)' 가운데 언론통폐합(이라 쓰고 대학살이라고 읽는다)을 주도한 허문도도 대형 이벤트를 기획했다. '국풍 81'이었다. '젊음의 잔치 겨레의 향연', '민족대화합의 장' 등 그럴싸한 말은 다 갖다 붙인 메이드 인 관(官) 축제였다. 여의도에 막걸리가 넘쳐흘렀고 정권은 통행금지까지 해제하는 특혜를 베풀었다.
국풍 축제 중 대학생 가요제에서 이용은 <바람이려오>로 금상을 탄다. 누가 봐도 군계일학이었는데 대상은 서울대 그룹사운드에 돌아갔다. 수상자의 '네임밸류'가 고려됐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그래도 정권의 실세는 이용이 기특했던 모양이다. "가수 이용의 데뷔곡 <바람이려오>는 허문도의 18번이 됐다. 그는 이용을 자주 출연시키도록 KBS와 MBC에 압력을 넣기도 했다
릴짱
."(<동아일보> 1988년 11월 3일) 세도가의 입김을 타고 날아오른 이용의 상승세에 폭발력을 더한 노래가 <잊혀진 계절>이었다.
7080 카페에서 첫 곡<바람이려오>에 열화와 같은 박수가 몰아친 뒤 이용이 입을 열었다. "저는요 10월이 제일 좋아요. 저는 1년 동안 벌 돈을 10월에 다 벌어요. 다른 달은 공치는 달도 있는데 10월만 되면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다 섭외가 와요. 뭐 때문인지는 아시죠?" 그 이유를 어찌 모를까. 미파솔 미레도 시도라시솔 도레미파솔라~ 피아노 전주만 나와도 내 또래라면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감는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가사에 생전 있지도 않은 10월의 마지막 밤을 제멋대로 상상하게 되는 것을.
원래 이 노래는 조영남을 겨냥해 지어졌고 가사도 '9월의 마지막 밤'이었다는데 발표가 늦어져 10월로 바뀌었다고 한다. 곡도 곡이지만 가사가 매력적이었다. 특히 여자 앞에서는 돌이 되어 버리는 몹쓸 버릇의 남자들에게 그랬다. 작사가 박건호씨도 그런 류였던 것 같다. "비 내리는 9월의 마지막 밤에 한 여자와 헤어지면서 겪은 심정을 가사로 나타낸 것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오마이뉴스> 2013년 10월 31일) 카페의 중년 남녀들은 턱을 괴고 황홀하게 이용의 노래를 들었다. 어쩌면 모두가 "한 마디 변명도 못 하고"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단풍 물든 모(某)월의 마지막 밤을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공포에 휘감긴 '10월의 마지막 밤'
▲ ?1986년 10월 28일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은 당시 '자민투'와 '민민투'로 양분돼 있던 이들을 하나로 모아 공동의 실천방향을 정하자는 의도로 발족됐다. 이들은 '반독재' '반외세' '평화통일'의 구호를 내세웠다.
ⓒ 건대신문
우리 현대사에는 가수 최백호가 <낭만에 대하여>에서 노래한 '실연의 달콤함'과는 거리가 먼, 온몸이 찢겨 나갈 듯한 공포에 휘감긴 '10월의 마지막 밤'을 겪은 사람들이 수천 명이나 존재한다. 1986년 10월 28일부터 나흘 동안 건국대학교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1986년 10월 28일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 결성식이 건국대학교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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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도 원천 봉쇄가 일상이던 시절 경찰은 학생들의 진입을 막지 않았다. 학생증 검사도 없었다. 학생들이 집회를 열고 선언문을 낭독한 뒤 술자리 약속을 주고받던 오후 3시 20분, 갑자기 경찰이 학내에 진입한다. 학생들은 도서관, 사회과학관 등으로 피신해 엉겁결에 .거 농성을 벌이게 된다. '건대항쟁', 정권의 말로는 '공산혁명분자 건국대학교 .거농성 사건'의 시작이었다.
10월의 마지막 날, 딱 요즘 날씨다. 낮에는 따뜻해도 밤이면 한기가 살을 파고든다. 그해는 이즈음 첫눈까지 내렸다. 경찰은 물도 전기도 끊었다. 학생들은 공포와 굶주림, 추위를 견뎌야 했지만 당시 '공산혁명분자'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건 지켜냈던 청년들이었다. 남학생들은 옷을 벗어 여학생에게 주거나 서로 부둥켜안고 체온을 나눴다.
매.에서 음식물을 가져오면서도 돈을 걷어 쌓아 놓았다. 초코파이 하나를 몇 명이 한 입씩 베어 먹으면서도 자기 몫을 포기하고 남을 더 먹이려는 학생들이 많았다. 음식물이 있는 건물에서는 굶주리는 다른 건물의 동료들을 위해 줄을 매달아 바구니에 담아 전달했다. 운동권과 관계없던 건국대 학생들도 "다른 학교 학생들을 지키려고" 농성장에 남았다. 학생증을 보여 주면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던 10월 30일 당국은 또 하나의 희대의 사기극을 발표한다. 북한이 금강산댐으로 서울을 수몰시킬 음모를 꾸민다는 허무맹랑한 발표였다. 63빌딩이 반이나 잠기고 국회의사당도 지붕만 남긴 채 물속으로 사라진 미니어처가 사람들을 자극했다. '공산혁명분자'들을 강경 진압할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 ?1986년 10월 31일 백골단을 필두로 건대 행정관에 들이닥친 전경은 끝까지 저항하던 학생들을 옥상까지 몰아넣고 결국 체포했다. 건대항쟁은 건국 이래 단일 사건으로는 연세대사태 다음으로 가장 많은 구속자 1288명을 기록했고 그렇게 66시간 50분의 투쟁은 끝이 났다.
ⓒ 건대신문
1986년 10월 31일, 마침내 황소30작전이 개시된다. 고가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중세 공성전 같은 싸움이 벌어졌다. 하늘에서는 소방 헬기가 옥상에 종아리까지 물이 찰 정도로 물을 뿌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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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을 넘어 들어오는 경찰의 곤봉 앞에서 남학생들은 몸을 날려 여학생들을 감쌌다. 그 매를 대신 맞았다. 1500여 명이 연행됐고 1288명이 구속됐다. 정부 수립 이래 최대 규모의 구속 사태였다. 경찰서 유치장마다 학생들이 그득했다.
"그나마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분들은 입을 열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은 그날을 잊고 싶어 한다. 건물에 갇혀 있던 기억 때문에 좁은 실내에만 있어도 호흡이 잘 안된다는 분들도 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그날 그곳에 갇혀 있다."(CNB뉴스 2022년 12월 8일)
그날의 트라우마와 연행 뒤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등진 사람도 여럿이다. 그들에게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어떻게 들릴까. 과연 끝까지 들을 수 있을까. 건국대학교 밖의 다른 대학에서도 。거농성이 벌어졌다. 당시 농성에 참여했던 선배는 한 여학생의 외침을 기억했다. "완전히 고립됐어요. 밖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다 죽어요."
1986년 10월의 마지막 날 건국대학교에는 함께 와 있던 연인들도 있었다. 불교연합동아리 회원이던 연세대생 이상근과 이화여대생 정원주였다. 그들은 다른 건물로 피신해 마지막 날을 떨어져 맞았다. 지옥 같았던 나흘 동안 서로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상대방이 무사하기만을 기도하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
농성이 진압된 뒤 남자는 구속됐지만 여자는 풀려나왔다. 이후 감옥에 간 남자를 극진히 옥바라지하면서 사랑은 더 깊게 영글었고, 둘은 결혼에 골인했다.(<통일뉴스> 2006년 10월 29일)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무 살의 청년이 40대가 됐지만 10월만 되면 당시의 동지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떠올라 맥박이 빠르고 호흡이 가빠지는 병을 앓고 있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이상근·정원주 부부에게 두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잃지 않았던 사랑의 기억을 소환할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공포에 여전히 갇혀 있는 사람들, 끝내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10월의 마지막 밤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1986년 10월의 마지막 밤으로부터 꼭 40년이 지났다. 해마다 돌아오는 10월의 마지막 밤, 누군가는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잊혀진 계절>을 부를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전혀 다른, 떠올리기조차 두려운 10월의 마지막 밤을 떠올릴 것이다. 그 모두의 10월이 끝내 '잊혀진 계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입한다. 학생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