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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6-11-0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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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마수운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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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를 끝으로 우리는 마침내 로스앤젤레스(LA)로 향하는 귀환길에 올랐다. 알래스카의 주도인 주노는 사방이 거대한 산맥과 빙하,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육로로는 바깥세상과 연결되지 않는 고립된 도시다. 결국 차를 싣고 배로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선택한 경로는 '알래스카 마린 하이웨이(Alaska Marine Highway)'. 카페리에 트럭을 싣고 캐나다 서부의 깊고 웅장한 피오르 해안을 따라 남하해 미국 본토 서북단 워싱턴주의 항구도시 벨링햄(Bellingham)에 닿은 뒤, 그곳에서 다시 2500킬로미터를 운전해 내려가는 장대한 귀환 여정이었다. 알래스카에 들어와 벌써 세 번째 카페리 탑승이었다. 능숙하게 수속을 마치고 육중한 트럭을 배 안 깊숙이 밀어 넣었다. 주노에서 벨링햄까지는 직선거리로 1500킬로미터 남짓이지만, 배는 수많은 섬과 복잡한 내해(Inside Passage)를 지그재그로 에두르고 중간에 네 곳의 항구를 경유하기에 장장 3박 4일, 85시간이나 걸리는 긴 항해다. 차를 단단히 결박해 두고, 나흘간 선내에서 쓸 짐을 챙겨 들고 승객 구역으로 올라갔다. 워낙 장거리 뱃길이라 크루즈선처럼 3개 층에 걸쳐 100여 개의 숙박용 객실(캐빈)이 갖춰져 있었다. 배정받은 객실 열쇠를 받으려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그런데 직원의 건조한 한마디가 허를 찔렀다. "예약 내역이 없습니다. 지금은 빈 방이 하나도 없으니 배 안 빈자리 아무 데서나 지내셔야 합니다." 의자든, 소파든, 통로 바닥이든 편한 곳에 누워 자면 된다는 직원의 태도는 너무도 태평스러웠다. 매부는 인터넷으로 분명 예약 버튼을 누르고 결제까지 마쳤다고 항의했지만, 전산망 어딘가에서 누락된 모양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출항한 배, 우리는 곧장 '선상 비상 체제'로 전환했다. ▲ 주노-벨링햄 카페리선?알래스카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카페리로 매주 1~2회 운영하며 구내식당은 팁이 없는 천사표 공공식당이다. ⓒ 한진석 바리바리 싸들고 왔는데... 칠순의 복도 노숙이라니 잠자리는 둘째 치고, 객실에서 편히 지낼 요량으로 챙겨온 짐들이 골칫거리였다. 야마토릴게임추천 캐리어와 노트북 가방은 물론이고, 남은 비상식량을 배 안에서 다 먹어 치우겠다며 바리바리 싸 들고 왔는데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선상 노숙 체험이나 화끈하게 한번 해보자.' 다시 차로 내려가 침낭, 매트리스, 이불 등 노숙용 장비를 챙겨 들고 올라왔다. 혹시나 해서 챙겨왔지만 쓸 일이 없어 내심 아쉬웠던 장비들이었는데, 잘됐다 생각에 은근히 기분까지 들떴다. 카펫이 깔린 객실 구역 한쪽 복도에 침낭과 매트리스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험난한 오지 배낭여행으로 단련된 내게, 바람 막아주고 바닥 따뜻한 실내 복도는 감지덕지한 보금자리였다. ▲ 바람 막아주는 실내 복도쯤이야 감지덕지다.?오지 방랑으로 다져진 내게 노숙은 낯설지 않은 일상이다(사진은 작년 남미 파타고니아 비글 해협 선상에서). ⓒ 한진석 하지만 평생 비즈니스석을 타고 다니며 사업체를 이끌어온 매부의 얼굴에는 난감함과 참담함이 역력했다. 야지에서 노숙하는 거야 어드벤처니까 그렇다 쳐도, 젊은 애들도 객실에서 자는데 70대 사장님이 복도 바닥에서 노숙자처럼 잔다는 것이 영 맘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커다란 짐꾸러미를 한구석에 쌓아두고 지키는 궁색한 꼴을 상상하니,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매부는 노숙 상황이 심란했는지 혹시 모를 취소 표가 나오면 연락해 달라며 데스크에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우리 앞에 이미 십여 명의 대기자가 줄을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을 잡지 못해 선내 곳곳에 둥지를 튼 승객이 수십 명이었고, 어떤 젊은 배낭족들은 찬 바람 부는 야외 갑판 위에 텐트를 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기적처럼 데스크에서 연락이 왔다. 첫 기착지에서 탈 예정이던 승객이 예약을 취소해 빈방이 하나 나왔다는 것이다. 대기자가 십여 명이나 있었음에도 우리에게 우선권이 돌아온 이유는 뜻밖이었다. 동행 둘 다 70대로 대기자 명단 중 최고령이라는 이유로 '경로우대' 혜택을 받은 것이다. 나이 많은 게 벼슬은 아니라 여겼건만, 적어도 이곳 알래스카 뱃길에서는 분명 벼슬이었다 무료게임 . 비록 2층 침대가 놓인 가장 비좁은 방이었지만 매부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내심 유쾌했던 노숙 체험이 너무 싱겁게 끝난 것 같아 살짝 아쉬웠지만, 군말 없이 방으로 짐을 옮겼다. 문제는 2층 침대였다. 2층은 천장이 낮아 머리를 부딪치기 일쑤인 몹시 불편한 자리다. 매부와 나는 서로 편한 1층을 쓰시라며 팽팽하게 양보전을 벌였다. 매부는 나보다 네 살 위 형님이셨지만, 나는 매부가 꼼짝 못 하는 '무서운 아내'를 순한 양으로 만들 수 있는 친오빠였다. 지난 여행 중 더블침대 방밖에 없을 때도 서로 침대에서 주무시라 양보하다가 가위바위보 끝에 내가 소파 신세를 진 적이 있었기에, 매부는 이번만큼은 자신이 2층으로 가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다시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겨루었고, 다행히(?) 내가 진 덕분에 매부 형님이 편안한 1층을 차지하고 내가 2층으로 올라갔다. ▲ 카페리에서 노숙하는 승객들?카페리 객실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일부러 노숙하는 승객도 많았다. 심지어 배 위에 텐트를 치고 노숙하는 배낭여행자도 몇 명 있었다. ⓒ 한진석 살인 물가 알래스카에서 만난 뜻밖의 구내식당 방 문제를 해결하고 허기를 달래고자 선내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메뉴판의 가격표를 들여다보던 우리는 두 눈을 의심했다. 음식값이 바깥 일반 식당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 감격스러운 문구가 메뉴판 한쪽에 굵은 글씨로 박혀 있었다. '팁 금지(No Tipping).' 알고 보니 알래스카와 미국 본토를 잇는 이 마린 하이웨이 카페리는 사설 크루즈가 아니라 알래스카 주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공공 교통수단이었다. 험준한 지형 탓에 고립된 도서·해안 지역 주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물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식당 역시 주정부의 지원으로 착한 가격에 노 팁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알래스카 오지를 돌며 살인적인 물가와 살벌한 팁 요구에 혀를 내둘렀던 우리였다. 뜻밖의 '천사표 공공 식당'을 만나니 마음까지 훈훈해져 매 끼니를 부담 없이 푸짐하게 사 먹는 호사를 누렸다 모바일 바다이야기 전체이용가 . 다만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하나 생겼다. 배 안에서 3박 4일 동안 남김없이 다 먹어 치우겠다며 트럭에서 바리바리 챙겨 올라온 컵라면과 햇반, 전투식량 보따리를 손도 대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남겨버린 것이다. 결국 그 묵직한 비상식량 꾸러미는 85시간의 항해가 끝난 뒤 벨링햄 항구에서 고스란히 다시 트럭 트렁크로 실려 내려가, 2500킬로미터 남쪽 LA로 향하는 귀환길을 끝까지 함께해야 했다. ▲ 카페리의 구내식당?전망은 최고이지만 알래스카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관계로 음식 가격은 저렴했고 팁까지 없는 최고의 식당이었다. ⓒ 한진석 러시아의 잔영 시트카, 그리고 200m 협수로의 기적 첫날밤을 보낸 배는 아침 8시, 첫 기착지인 시트카(Sitka)에 닿았다. 오후 3시 출항 전까지 주어진 7시간 동안 승객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도시 구경에 나섰다. 시트카는 알래스카가 제정 러시아 영토였던 시절, 러시아 총독이 주재하던 행정의 중심지였다. 거리 곳곳에 러시아 시대의 목조 건물과 양파 모양 돔을 얹은 정교회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이국적인 풍취를 풍겼다. 1867년 미국으로 주인이 바뀐 뒤에도 러시아인들이 그대로 정착해 살아온 탓인지, 스쳐 지나가는 주민들의 이목구비에서도 은근한 슬라브인의 잔영이 느껴졌다. ▲ 시트카 러시아 정교회 앞의 칠순 두 사내?1867년 미국으로 넘어가기 전 러시아의 수도였던 시트카의 유서 깊은 성 미카엘 정교회를 배경으로 선 필자(오른쪽)와 매부. ⓒ 한진석 항구 한쪽에는 지난 여정에서 들렀던 발데스처럼 연어를 인공 부화해 방생하는 산란장이 있었다. 발데스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아담했지만, 산란장 앞바다와 좁은 개천에는 수많은 연어가 마지막 생을 불사르는 필사의 도약을 펼치고 있었다. 물살을 거슬러 온몸을 던져 겨우 뜀뛰기에 성공한 녀석들은, 그러나 계곡 너머 고향이 아닌 인부들의 거친 손길과 마주해야 했다. 산 채로 알을 짜내인 뒤 커다란 플라스틱 통 속으로 무심하게 던져지는 생명의 종막. 대자연의 거룩한 회귀 본능과 인간의 냉정한 수확이 얽힌 현장은 숙연하면서도 서글픈 잔상을 남겼다. 시내 구경을 마치고 다시 배로 돌아와 갑판 위에 섰다 신천지 . 시트카를 출발한 배는 피오르 해안의 무수한 섬들 사이로 난 비좁은 골목길 같은 수로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수로의 폭은 고작 200미터 남짓. 배 좌우로 1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초근접 거리에서 빽빽한 침엽수림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게 아니라, 웅장한 협곡 사이를 거대한 배로 래프팅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100킬로미터 넘게 이어진 이 협수로는 3박 4일 항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숨 막히는 비경이었다. 암초라도 건드릴까 봐 배는 속도를 대폭 줄였다. 뱃머리 맨 앞자리에 선 선원은 전방을 매섭게 주시하며 선장에게 쉴 새 없이 수신호를 보냈다. 배 옆 수면 위로는 배영을 하듯 드러누워 여유롭게 조개를 깨 먹는 해달들이 수시로 고개를 내밀었다. 사방이 촘촘한 섬들로 둘러싸여 바람조차 비껴가는지, 바다는 거울 같은 호수보다 더 잔잔했다. 태고의 침묵을 품은 수면 위로 짙푸른 숲의 그림자가 칼처럼 떨어져 내리는 광경은 신비롭다 못해 몽환적이었다. ▲ 피오르 해안의 아름다운 모습?수로의 폭은 고작 200미터 남짓. 배 좌우로 1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초근접 거리에서 빽빽한 침엽수림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 한진석 "100만 원으로 10박 크루즈를?" 땡처리 크루즈의 비밀 항해 이틀째, 배는 알래스카 최남단 항구 케치칸(Ketchikan)에 닻을 내렸다. 케치칸은 19세기 말 골드러시와 연어 가공업의 번성 속에 성장한 도시로, 과거 밤마다 거친 사내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던 유명한 수상 유곽(홍등가) '크릭 스트리트'가 있던 곳이다. 오늘날의 케치칸은 하루에도 서너 척의 초대형 크루즈선이 입항하는 번화한 관광도시다. 낡은 유곽이 늘어섰던 개천가 나무 데크길은 이제 크루즈 승객들의 지갑을 노리는 기념품。과 번쩍이는 보석상들로 빼곡했다. ▲ 알래스카의 첫 도시 케치칸의 관문?과거 거친 벌목공과 광부, 어부들의 땀방울로 일군 도시 케치칸의 역사 조형물 '더 록(The Rock)' 뒤로 크루즈 승객들을 맞이하는 번화한 상。가가 펼쳐져 있다. ⓒ 한진석 기념품。을 둘러보던 중, 낯익은 우리말 억양의 한국인 60대 여성들이 왁자지껄 떼를 지어 들어왔다. 모바일 야마토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수수한 옷차림에 친숙한 '뽀글이 파마머리'를 한 우리네 평범한 아낙네들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붙였더니,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는 교민들인데 '폭탄 세일'로 나온 크루즈 땡처리 표를 상상할 수도 없는 헐값에 구해 단체로 왔다고 했다. 크루즈라면 으레 거액이 드는 부자들의 여행인 줄 알았는데, 여행사들이 출발 직전 빈방을 채우지 못하면 파격적인 덤핑을 친다는 것이다. 바깥 풍경이 보이지 않는 창문 없는 안쪽 방(인사이드 캐빈)을 잡고, 배에서 무제한 제공하는 뷔페 음식만 알뜰하게 챙겨 먹으면 단돈 칠팔백 달러(우리 돈 100만 원 안팎)로 10박짜리 호화 크루즈를 즐길 수 있다는 특급 비밀이었다. 부자들만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크루즈의 허를 찌른 그녀들의 알뜰한 지혜에 무릎을 탁 쳤다. 짠물 배낭여행의 달인이라 자부하던 내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 거대한 호화 크루즈 모습?기회만 잘 잡으면 창문 없는 안쪽 방(인사이드 캐빈)을 잡고, 배에서 무제한 제공하는 뷔페 음식만 알뜰하게 챙겨 먹으면 단돈 칠팔백 달러(우리 돈 100만 원 안팎)로 10박짜리 호화 크루즈를 즐길 수 있다. ⓒ 한진석 고래마저 무덤덤해진 권태, 그리고 뱃길의 끝 케치칸을 떠난 배는 알래스카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캐나다 해안선을 따라 목적지인 벨링햄까지 장장 35시간의 무정차 항해에 돌입했다. 오직 바다와 하늘, 그리고 배뿐인 고립의 시간이었다. 항해 첫날에는 선장의 "고래 출몰" 안내 방송이 울릴 때마다 허겁지겁 갑판으로 뛰어나가 감탄사를 연발했건만, 이틀 밤을 넘기자 그 감흥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우현에 혹등고래 두 마리가 나타났습니다"라는 방송이 울려 퍼져도,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눈길 한번 힐끗 주고는 그만이었다. 아무리 경이로운 야생도 일상이 되면 무뎌지는 법, 길고 긴 뱃길 위로 나른한 권태가 내려앉았다. 그렇게 배 안에서 마지막 밤을 온전히 지새웠다. 이튿날 아침, 멀리 남쪽 수평선 너머로 미국 본토의 거대한 대륙선이 서서히 짙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3박 4일, 85시간 동안 이어진 긴긴 표류의 종착지인 벨링햄 항구가 이제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있었다. ▲ 카페리 옆으로 지나가는 범고래?3박 4일 항해중 고래, 돌고래, 해달 등 많은 볼거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환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이 없어졌다. ⓒ 한진석 다만 생각지도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