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일본에서 초연된 연극 '스미레 미용실'(9월 12일~10월 3일)이 처음 한국 관객을 만난다.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국내 관객에게 재일 한국인의 삶을 깊이 각인시킨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69)의 작품이다.
'이를테면 마치 들에 피는 꽃처럼', '야끼니꾸 드래곤'에 이은 '재일 한국인?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2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의 제안이 한국 초연으로 이어졌다.
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정의신 연출은 작품 속 인물들처럼 소박하고 유쾌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연습실 분위기를 묻자 "배우들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다 자발적으로 캐릭터를 찾아가도록 의견을 조율한다"며 "매일 재미있다"고 말했다. '야끼니꾸 드래곤'이?주로 일본어로 진행됐던 것과 달리 이번 무대에서는 모든 배우가 한국어로 대사를 전달한다. 재일 한국인의 이야기가 한국 관객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오는 셈이다.
'스미레 미용실'은 1960년대 일본 규슈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재일 한국인들의 희로애락을 그린다. 석탄산업이 쇠퇴하고 무리한 감원과 안전 부실로 탄광 사고가 잇따르던 시기, 사고 후유증인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가족의 생계가 무너지는 이들이 생겨났다. 정의신은 그 참혹한 현실 속에서 파칭코와 선술집 사이?덩그러니 자리한 작은 미용실에 주목했다.
그가 재일 한국인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자신의 뿌리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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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메지성 외벽 아래, 땅이 없는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던 동네에서 스무 살까지 자랐어요. 제 자신이 소수자였기에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죠.” 그에게 '마이너리티'란?작품을 위해 선택한 소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그의 창작 세계로 이어졌고, 재일 한국인의 이야기를 꾸준히 무대에 올리는 동력이 됐다.
"지금도 제가 마이너리티라는 것은?변함이 없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소수자라는 사실은 제가 바꿀 수 없는 삶의 일부니까요. 부모님이 그러셨듯 저 역시 조국에 대한 긍지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의 무대는 비극에 마냥 짓눌리지 않는다. 가장 슬픈 순간에 웃음이 터지고, 그 웃음 끝에 다시 삶의 비애가 스며든다.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 픽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소소한 유머는 정의신 극작의 전매특허다. "늘 진지하게만 가면 심심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진지한 모습 자체가 우스꽝스러울 때가 있어요. 비극은 희극이고 희극도 비극이죠. 슬픔 속에 유머를 녹여낼 때 비로소 삶의 균형이 맞춰집니다."
대학 중퇴 후 어느 선배의 권유로 연극극단 '흑색텐트'에 들어간 그는 영화와 연극을 오가다 극작에 입문했다. 스스로를 '호기심이 매우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장르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찾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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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극과 오페라, 영화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창작 열정 덕분에 그의 스케줄은 이미 2028년까지 빼곡하다.
대본을 남기고 고인이 된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오페라 '세츠'부터 부산과 제주에서 오사카 방직공장으로 건너간 재일 교포?여성들의 삶을 비제의 '카르멘'과?결합한 작품까지 구상도 다채롭다. 연극에 머물지 않고 다른 장르와 시대, 공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확장하는 것이다.
OTT와 영화 등 매체 예술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그가 무대를 놓지 않는 이유는 끝까지 완성되지 않는 라이브의 매력 때문이다.
"배우가 바로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대사를 뱉을 때 느껴지는 생동감은 무대만의 특권입니다. 영화는 편집하면 끝이지만, 연극은 마지막 날까지 관객의 반응을 살피며 배우와 계속 의논하고 수정해 나갈 수 있죠.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그들과 어울려 완성해가는 과정도 제 인생의 일부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의신에게 60여 년 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재일 교포'라는 특수성을 넘어, 지금의 한국 관객에게 이 작품이 어떤 이야기로 남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탄광 사고에 휘말린 옛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결코 지나간 옛날이야기로만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절실한?'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2일부터 10월 3일까지 열린다. 배우 전무송, 최지연, 전국향 등이 캐스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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