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엔 끔찍한 '악마' 여럿이 등장한다. 이들 중 자신의 악행에 일말의 가책을 느끼는 이는 히치하이커를 유혹해 살인한 샌디 정도다. 나머지 악마들은 맹자가 말한 '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의 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는다. 이처럼 악마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선을 넘는 것이 곧 악마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악마들이 등장한다. 미군 병사를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십자가에 매달아 놓는 일본군, 아들의 반려견을 죽여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고 기도하는 윌라드, 마을 소녀들을 성적 노리개로 착취하는 프레스턴 목사, 부활을 증명하겠다며 자기 아내 목을 찔러 죽이는 부흥사, 예술사진을 찍는답시고 히차하이커를 유혹해서 죽이는 칼과 샌디 부부가 그렇다.
이들의 공통.은 모두 자기 확신에 차 있어서 자신들이 저지르는 악마적 행위에 일말의 가책도 갖지 않는다는 .이다. 이 '악마'들 사이에서 자신의 악행에 그나마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유일한 '방황하는 악마'는 샌디뿐이다.
부부 연쇄살인마인 샌디는 남편 칼과 한적한 오하이오 국도를 떠돌면서 히치하이커라는 만만한 먹잇감이 걸리면 그를 유혹해서 변태성행위의 촬영에 끌어들인 후에 죽여버린다. 그 횟수가 쌓이면서 샌디는 차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혼란스러워한다. 남편 칼이나 영화속에 등장하는 다른악마들과는 그나마 차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맹자孟子는 「공손추公孫丑 상上」 6장에서 '인개유불인인지심人皆有不忍人之心, 선왕유불인인지심先王有不忍人之心, 사이유불인인지정의斯以有不忍人之政矣'라는 가르침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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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마 남에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힘이 있어도) 함부로하지 못하는 마음(불인인지심)을 가지고 있다. 옛 성왕聖王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겠지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차마 하지 못하는 선정善政(불인인지정)을 펼쳤다"는 뜻이다.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은 맹자 사상의 핵심이자, 동양 정치철학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왜 함부로 그 칼을 휘두르면 악마가 되는가"를 설명하는 인상적인 대목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악마는 한결같이 불인인지심의 선線을 넘은 넘는다. 악마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선을 넘는 것이 곧 악마다. 악마들 중에서 샌디만이 유일하게 그나마 불인인지심의 혼란과 자책감이라도 느낀다.
미군을 포로로 잡은 일본군, 어린 아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인 아버지 윌라드, 마을사람들의 절대적 지도자인 프레스턴 목사, 마을 치안의 절대권력을 갖고 있는 보데커 보안관 모두 자기에게 쥐어진 칼을 불인인지심 없이 휘두르는 순간 악마가 된다.
영화엔 선을 넘는 악마들이 등장한다.[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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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민주주의는 제도가 그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불안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다니엘 지블랫(Daniel Ziblatt)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 cracies Die·2018년)」를 찾아보는 모양이다.
이들이 민주주의의 '생존'을 위해 제시한 두가지 처방전인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도 결국은 이미 3000년 전 맹자가 제시한 '불인인지심'의 처방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을 다룬 '암살자(들)'이라는 '창작영화' 개봉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감독은 당연히 역사라는 '텍스트(text)'를 해석할 자유와 권한이 있겠지만, 그 해석이 '과잉해석(overinterpretation)'이 될 경우 그에 따른 비난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뛰어난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당연히 모든 기호의 자유롭고 새로운 해석을 열렬히 옹호하지만 동시에 과잉해석을 극도로 경계한다. 에코가 「해석과 과잉해석(Interepretation and Overinterpretation·1992년)」에서 일러주는 '과잉해석 감별법'은 다음과 같다.
우연한 유사성을 필연적 관계로 바꾼다, 반대되는 증거는 음모나 은폐의 증거로 처리한다, 하나의 단서를 설명하기 위해 계속 새로운 가설을 덧붙인다, 텍스트 전체보다 특정 기호나 구절 하나를 우선시한다, 해석이 텍스트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해석을 방어한다.
에코는 이런 함정에 빠진 과잉해석을 '편집증적 해석'이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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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집 앞에서 삼각형 모양 돌 하나를 발견하고 이 집 주인이 프리메이슨(이신론적 사교단체) 단원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면, 텍스트(역사)의 실체적 진실은 。. 오리무중이 된다.
그렇게 과잉해석의 함정에 빠져 영화는 결국 대통령이 권력욕에 자기 아내를 살해하는 자작극을 벌였을 수도 있다는 '초超과잉해석'의 냄새까지 풍기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레비츠키식으로 이 영화를 말하면, 그 상대에 대한 '관용'은 저버리고 자제력을 잃은 채 해석의 자유와 권한을 누렸다는 말도 되겠다.
직관적으로 말하면 '선을 넘었다(over)'는 소리다. 'Overinterpretation(과잉해석/억측)'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수많은 영어 단어 앞에 'over-'가 붙으면 대개 제아무리 좋은 의미도 한순간에 재앙의 의미가 된다. 'overdo(무리하다)' 'overdose(약물과다/치사량복용)' 'overthink(망상)' 'overrun(폭주/침범)' 'overstretch(과잉팽창/파열)' 등등 모두 그렇다.
그런데 이 영화의 '과잉해석(over)'에 분노한 어느 국회의원이 영화에 출연한 주연배우의 얼굴까지 '과잉해석'하면서 "북한 편 드는 게 생긴 것도 북한상"이라고 또 폭주(over)한다. 모두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혐오표현은 자유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차마 못할 일(불인인지심)'의 선을 넘은 폭주가 .입가경이다 모든 비행기 승객은 자신이 배정받은 좌석을 뒤로 젖힐 자유와 권한이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껏(over) 젖히면 누구나 욕먹는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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