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의 한 공방. 이주용(64)씨가 나무판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똑똑’ 두드리며 소리를 듣더니 나무의 결을 살핀다.
“두드려 보고 소리를 들으면 대충 짐작할 수 있어요. 이건 마스터 급, 이건 트리플에이(AAA) 급…”
이주용 클래식 기타 장인이 자신의 파주 공방에서 건조중인 기타 앞판을 살펴보고 있다.
기타 제작은 나무를 고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클래식 기타 앞판에는 스프루스와 시더를 주로 사용한다. 장인이 서로 다른 색과 결을 가진 나무를 가리켰다.
“시더는 두툼하고 힘 있는 소리가 주변으로 퍼지는 느낌을 주고, 스프루스는 맑고 까랑까랑하면서 소리가 관객을 향해 뻗어 나가죠”
기타 제작을 위해 건조중인 나무판을 살펴보고 있는 이주용 장인.
이 장인이 자연 건조중인 나무판을 살펴보고 있다. 왼쪽은 80여 년, 오른쪽은 10년 쯤 묵은 것이다.
대중음악에서 많이 사용하는 포크 기타와 클래식 기타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소리와 연주 방식이 다르다. 포크 기타가 금속현 특유의 선명하고 힘 있는 소리를 내며 여러 줄을 한꺼번에 울리는 코드 연주가 많다면, 클래식 기타는 나일론 현을 사용해 보다 부드럽고 깊은 음색을 낸다. 또 손가락으로 한 음 한 음을 짚어 선율과 화음을 만들어내는 클래식 기타는 울림과 음색, 연주자의 손끝에 대한 반응까지 중요하다. 지판의 폭이 포크 기타보다 넓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주용 장인이 자신이 만든 기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가 만드는 악기의 가격대는 다양하지만 악기에 들이는 정성은 한결 같다.
앞판 만들기 위해 두 개로 나눈 나무판을 대칭으로 붙이기 위해 얇게 대패를 이용해 가공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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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좌우가 맞지 않기 때문에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기타의 앞판은 직사각형 나무판을 가운데에서 갈라 좌우 대칭으로 맞춘 뒤 얇게 가공한다. 이어 뒤판과 측판을 만들어 붙이면 기타 특유의 몸통이 된다. 마지막으로 도장과 부품 조립을 거치면 비로소 한 대의 기타가 완성된다.
기타 앞판 중앙에서 소리를 내는 구멍인 목상을 탁승 드릴로 제작하고 있는 모습.
고급 기타일수록 손이 더 많이 가고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천연 도료를 사용하는 경우 30~50차례 반복해서 칠하기도 하는데 자연 상태에서는 하루 한 번 정도 가능하다. 온도를 높이면 하루 서너 차례 작업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고가의 기타 한 대가 완성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이유다.
이주용 장인 작업실 한켠에 있는 도구들. 끌, 자, 칼, 드리이버 등 다양한 종류가 구비돼 있다. 끌 종류만해도 20여 가지가 된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타 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따로 있다. 같은 재료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도 소리가 매번 같지 않다는 ..
“똑같은 공정으로 만들어도 어떤 건 소리가 잘 나오고, 어떤 건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장인은 작업 과정마다 기타의 소리를 다시 확인한다. 나무를 두드리고 만지고, 두께와 내부 구조를 조절하면서 악기가 내는 소리를 살핀다. 34년간 쌓은 경험으로 나무가 가진 작은 차이를 읽어내고 결과의 오차를 줄여가는 것이다.
좋은 악기의 기준은 결국 소리다. 하지만 단순히 큰 소리가 좋은 소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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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의 능력이 10이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이 가진 10을 자유자재로 내줄 수 있는 악기가 있고, 그렇지 못한 악기가 있어요.”
“장군이 명마를 얻으면 전장에서 더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과 같은 거죠.”
하나를 반으로 쪼갠 나무판을 글램프를 이용해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좌우 대칭을 맞추는게 기술이다.
기타 상판을 제작하고 있는 이 장인.
클래식 기타는 연주자의 손끝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 작은 힘으로도 섬세한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강하게 연주했을 때는 넓은 연주홀을 채울 만큼 충분한 음량을 내야 한다. 음량과 음색을 동시에 만족하게 하면서도 음의 반응 속도까지 맞춰야 한다.
“음량과 음색을 둘 다 만족하게 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
“연주자가 작은 소리부터 큰 소리까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이 장인이 완성한 악기를 들어 살펴보고 있다. 1대를 만들기 위한 제작 기간은 차이가 있지만 보통 2개월이 소요된다.
기타를 전공한 장인은 1994년 악기 제작을 시작했다. 학부 시절 담당 교수를 통해 스페인의 유명 기타 제작자 안토니오 마린 몬테로의 악기를 접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클래식 기타의 매력에 빠져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동기와 선후배들이 가진 좋은 기타를 빌려 도면과 치수를 직접 재며 꿈을 키웠다. 노력 끝에 첫 결과물이 나온 날 이 길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이 장인이 학부시설 선후배들에게 악기를 빌려서 치수 등을 기록해 놓은 스케치.
이 장인이 주로 사용하는 메인 테이블. 깔끔하게 정리가 잘 돼 있는 모습이다.
졸업 후 신촌에 공방을 열고 중저가 기타를 만들어 판매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제품 결함 이슈 등 크고 작은 문제가 연이어 터지면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릴게임 백경
. 악기에 대한 열정만으로 넘기 힘든 현실의 벽이었다. 이 위기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당시 그에게 부족했던 것은 좋은 재료였다. 좋은 클래식 기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자연 건조된 목재가 필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제작을 시작한 초짜에게 수십 년을 건조한 좋은 나무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던 중 스페인의 유명 기타 제작자 아르깡엘 에르난데스가 은퇴를 앞두고 자신이 보유한 제작용 자재를 내놓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단숨에 연락해 남은 돈을 긁어모아 자재를 인수했다. 장인은 “가격은 다소 비쌌지만, 저에게는 크나큰 행운을 거머쥔 일”이라고 말했다. 상급 클래식 기타를 만들 수 있는 최소 30년 이상 자연 건조한 목재들이었다. 지금도 작업실 한쪽에는 세월을 머금은 나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30~40년 묵은 것부터 50년 이상 된 목재도 있다고 했다. 너무 귀하고 아까워 아직 기타로 만들지 않은 채 보물처럼 고이 모시고 있는 나무도 있다.
모든 부품을 손수 만들기 때문에 이 장인의 공방에는 크고 작은 기계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측판과 후판 용으로 사용하는 브라질리안 로즈우드(하카란다). 현재는 벌목이 금지돼 특수한 케이스로 유통되는 귀한 재료다.
장인은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소리를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에 여념이 없다. 그가 만드는 기타의 가격은 수십만 원부터 1500만원까지 다양하다. 1년에 만드는 악기는 30~50대 남짓이다. 그러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생산량이나 가격이 아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소리’를 가진 기타를 만드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좋은 악기를 만드는 제작자들 수준의 기타를 만들어 보는 게 지금의 목표입니다.”
적막한 공방에서 장인이 하루도 쉬지 않고 홀로 작업에 몰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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