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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6-09-05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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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익의 인생 공간] 스코틀랜드 의회의사당 나뭇잎 모양의 지붕과 건물 구성이 인상적인 스코틀랜드 의회의사당. [사진 archdaily.com] “관공서 건물 중에도 인생 공간이 있나요?” 순간 멈칫. 공공기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 중역급 간부가 던진 질문이다. 주택이나 공연장, 종교 건축을 예로 들며 필자가 만난 인생 공간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관공서라니? 질문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다. 관공서 하면 으레 떠오르는 권위적인 공간 말고,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건축물이 있느냐는 뜻이다. 이제야 지면을 통해 답을 드린다. 필자의 인생 관공서, ‘스코틀랜드 의회의사당(Scottish Parliament Building)’이다. 스코틀랜드 의회의사당은 권위적이냐 아니냐라는 차원을 넘어, 차고 넘치도록 독창적이다. 부러진 나뭇가지, 휘어진 기둥, 잎사귀 모양의 지붕…. 마치 바닷가에서 찾아낸 물건을 모아 둔 보물 상자처럼, 서로 닮은 데 없는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건물을 이룬다. 그중에서도 필자의 눈길을 가장 끈 요소는 창문이다. 계단 같기도, 전시대 같기도 한 저 창가 자리는 의원 개인 사무실마다 설치된 ‘생각의 좌석’, 이른바 ‘씽크 포드(Think Pod)’다. 색종이를 오린 듯한 독특한 형태 내부로 들어가면, 튀어나온 창을 통해 도시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의원들은 이곳에 앉아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자신만의 수집품을 올려두기도 한다. 의원 수만큼 서로 다르게 꾸민 씽크 포드가 있는 셈이다. 의원 개인 사무실마다 다양한 형태로 설치된 ‘생각의 좌석’ 외부. [사진 archdaily.com]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스페인 천재 건축가 엔리크 미랄레스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좌석을 만들었을까. 필자의 상상을 조금 보태보자면 이렇다. “이보세요, 의원님들. 오늘도 굳은 얼굴로 정치적 이해관계만 따지고 있군요. 어린이라도 좋아할 만한 재미있는 좌석을 만들어 두었으니 동료 의원이 찾아오면 여기서 부드럽게 이야기를 시작해 보세요.” 나라 상징 대신 건축가 상상력 한껏 투영 처음 이 건물이 대중에게 공개되었을 때 여론은 극도로 좋지 않았다. 모바일 바다이야기게임다운 스코틀랜드를 대표해야 할 의사당인데, 대표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중요한 건물은 무언가를 직관적으로 상징해야 한다. 스코틀랜드의 상징 동물인 유니콘이라든가, 끈기와 용맹성 같은 국민성이라든가. 그걸 통해 다른 나라의 의회 건물과 차별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미랄레스는 누구나 생각하는 그런 흔한 상징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스코틀랜드의 거친 바위, 바닷가에 버려진 어선, 나뭇잎과 물고기 등 지역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형상들을 가져왔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을 세우면서 남해 다도해의 갯바위, 느티나무 아래 정자, 초가집처럼 일견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상징으로 내세운 셈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이런 설명조차도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중에 갖다 붙인 사후적 해석에 가깝다. 사실 미랄레스는 아무것도 참조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펜 끝에서 나오는 본능적이고 자유로운 창작을 따라갔을 뿐이다. 다른 분야의 용어를 빌리자면, 영화계에서는 이를 ‘작가주의’라 칭한다. 작가주의란 영화를 감독의 고유한 예술적 개성이 투영된 창작물로 보는 관.이다. 영화 한 편이 나오려면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손을 탄다. 소속사는 액션 신을 더 넣어 달라 하고, 투자자는 예산을 줄여 달라고 한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공동 생산물이다 보니 감독의 고유한 상상력이 .. 무뎌지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작가주의 영화란 이런 폐해를 줄이고 한 사람의 순수한 상상력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다. 그렇게 해야 화면의 구도·색감·음악 곳곳에 감독 특유의 독창적인 지문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마다 나오는 엉뚱한 농담 같은 것 말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주, 담당 공무원, 시민단체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한 건축가의 순수한 상상력이 투영되어 건물이 만들어진다면, 이를 ‘작가주의 건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그래도 되는 걸까? 어떻게 감히 한 건축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엉뚱한 상상력이 오천만 국민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가장 위대한 상징들은 모두 그렇게 탄생했다. 야마토무료게임 에펠탑은 프랑스의 그 어느 것도 상징하지 않는다. 바게트 모양을 본뜬 것도 아니고, 프랑스의 관용 정신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공학자 구스타프 에펠이라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효율적인 구조’에 대한 순수한 탐구가 형상화된 결과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역시 요른 웃존이라는 한 건축가의 상상력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은 나중에 이 건물을 두고 요트의 돛을 상징한다느니, 조개를 닮았다느니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역시 아니다. 건축가의 순수한 형태 탐구가 낳은 결과물이다. 작가주의로 탄생한 지극히 개인적인 상징은 모두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누구나 수긍하는 합의에서 나온 상징보다 훨씬 더 독창적이고 훌륭한 상징이 되곤 한다. 물론 누구나 척 보고 알 수 있는 상징으로 건물을 지으면 일은 쉬워진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는 건축에 숨어 있는 ‘전체주의적 사고’다. 국가나 건축가가 미리 정해둔 단 하나의 정답을 대중에게 주입하고 일사불란한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시민 각자가 개입하고 상상할 여지가 없다. 반면 미랄레스의 스코틀랜드 의회의사당 앞에서는 모두가 길을 잃고 딴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바람에 흩어지는 잎사귀를, 누군가는 바다 괴물의 눈을, 누군가는 맞잡은 손가락을 떠올린다. 건물이 전체주의적 상징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민주적 다의성’을 획득한 것이다. 무엇을 닮았는지 정답이 없는 건물, 이것이야말로 수많은 시민이 각자의 해석을 내놓을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이고 세련된 상징이 아닐까. 누군가는 반문할지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피 같은 세금으로 짓는 관공서를 건축가 개인 맘대로 짓게 둬도 되겠어?” 하지만 미랄레스의 작가주의는 단순한 예술적 고집이 아니다. 관공서 특유의 경직성을 부수기 위한 고도의 장치다. 통일성 대신 잡동사니를 모아 둔 것 같은 공간에서 회의를 하면 유연한 결정이 나온다. 개성이 담긴 창가 자리에서 시민을 만나는 정치인은 자연스레 권위를 내려놓게 된다. 공간이 관료주의를 허물고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처음의 생경함에서 벗어나자 사람들은 건축가의 매력적인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 설문조사에서 이 건물은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건물 중 하나로 선정됐고, 20년이 지난 지금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명작 건축으로 남았다 핸드폰바다이야기 . 최근 한국에서도 세종 대통령 집무실과 국가 상징 구역 설계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성과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건물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건축가들은 이에 화답하듯 한국의 전통 지붕을 현대화하고 ‘참여’와 ‘평등’을 소재로 한 마당을 설치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건축주·공무원·단체 입김서 자유로워야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런 건물을 가지고 있다. 세종시 자체가 ‘평등’이라는 사상을 거대한 도시 형태로 구현한 사례이기도 하고, 전통 처마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관공서는 셀 수 없이 많다. 과연 똑같은 상징을 또 하나 가져야 할까? 이제 우리도 진정한 독창성을 지닌 ‘인생 대통령 집무실’ ‘인생 국가 상징 구역’을 가질 때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과 행정 관료들은 미랄레스 같은 천재적 건축가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만약 건축가의 입에서 ‘전통 지붕선의 현대화’나 ‘비움의 미학’ 같은 관용구가 나온다면 즉시 경계해야 한다. ‘참여’나 ‘탈권위주의’ 같은 단어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동의할 만한 예측 가능한 결과물로 가겠다는 선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행정가들은 ‘나뭇잎’ ‘뒤집힌 보트’ ‘손가락’처럼 국가 상징물 논의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황당한 단어가 튀어나올 때 그것을 반겨야 한다. 진정한 명작은 바로 그 당혹스러운 낯섦에서 탄생한다. ‘인생 관공서’를 얻고 싶다면, 행정가는 건축가에게 단 하나의 과제만 던지면 된다. “지금껏 세상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것을 지어주시오.” 그리고 국가 상징 건물을 개관하는 날, 언론과 국민이 갑론을박을 벌인다면 안심해도 좋다. 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중요한 발전 동력인 ‘논쟁’을 건물이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관공서 건물도 인생 공간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 다만 그러려면 우리 모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스코틀랜드 의회의사당이 그랬듯, 처음에는 낯설고 심지어 우리를 화나게 하는 건물이 미래의 인생 공간이 될 테니까. 조성익 건축가. 홍익대 교수이자 TRU 건축사무소의 대표 건축가다. 맹그로브 숭인 코리빙으로 한국 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공간과 삶,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책 『건축가의 공간 일기』를 출판했다. 슨 생각으로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