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일 제30회 노인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나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훈했다. 허례허식을 걷어내고 인간 존엄을 지키는 장례문화를 일구는 데 외길을 걸어온 공로였다. 국가는 외면하지 않고 기억해 주었다.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식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가슴에 걸린 묵직한 훈장 뒤로 씁쓸함이 밀려왔다. 나는 그동안 사자(死者)의 존엄과 사람을 대하는 의례의 품격을 고민해 왔다. 그런 내 눈에 비친 서훈식 현장은 배려와 존중이 빠진, 주객이 전도된 자리였다. 화려한 조명과 삼엄한 경호 속에서 정작 가장 빛나야 할 수훈자는 지워지고 없었다.
행사 전날 VIP 참석을 이유로 세 시간 전까지 도착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세 차례의 리허설과 함께 하릴없이 무대를 바라보며 긴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배정된 자리는 무대 맨 오른쪽 구석 귀퉁이였다.
시간이 임박하자 부처 장관과 여야 정치인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그들이 행사장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사람은 누구였을까. 평생 헌신으로 국가의 훈·포장을 받게 된 주역들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수훈자 자리로 발걸음을 옮긴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주무 부처 장관조차 바로 옆 테이블 유력 인사들과 악수를 나누고 바쁘게 등을 돌렸다. 행사를 주관한 단체의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가슴 아팠던 대목은 가족에 대한 처우였다. 평생의 헌신 뒤에는 늘 묵묵히 희생하며 곁을 지킨 가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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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장 입장은 가족 2명으로 제한되었다. 나머지 가족은 별도 공간에서 영상 중계로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정작 당일에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먼 길을 달려온 가족들은 카페를 찾아야 했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서훈식을 지켜봤다. 행사장은 각 단체와 지역별 할당으로 채워졌다. 정작 그 결실을 함께 품어야 할 자리에 가족의 자리는 없었다.
단상에 올라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증을 건네받고 훈장을 패용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이 채 되지 않았다.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통령의 인사는 따뜻했고 격조가 있었다. 연설도 힘이 있었다. 고령사회의 현실과 재택 임종에 대한 인식이 인상 깊었다. 늙어가는 대한민국에 대한 걱정과 보살핌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대한민국 의전 시스템은 세심한 배려가 많이 부족했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국격이라고 하기엔 낯 뜨거웠다. 국격(國格)은 거창한 구호나 삼엄한 경호에서 나오지 않는다. 한 사람의 존엄을 지켜 주는 데 있다. 국가 포상의 본질은 국가에 헌신한 사람의 삶을 기리고 그 공로에 예를 다하는 것이다.
선진국의 서훈식은 철저히 수훈자와 가족의 날로 기획된다. 훈장은 한 사람의 가슴에 달리지만, 그 훈장을 만들어 온 세월에는 가족의 눈물과 희생이 함께 배어 있다. 백악관이나 엘리제궁의 훈장 수여식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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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원수는 식전 리셉션에서 수훈자와 그 가족들을 먼저 맞이한다. 차를 나누며 노고를 치하한다.
본 행사가 시작되면 배우자와 가족이 가장 앞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수훈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땀방울과 헌신의 역사가 장내에 정성스레 낭독된다. 수훈자가 직접 감사를 전한다. 장내는 기립박수로 화답한다. 카메라는 권력자의 뒷모습이 아니라 훈장을 달고 눈시울을 붉히는 노년의 얼굴과 그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가족의 눈빛을 비춘다.
우리의 시상식은 왜 이토록 주객이 전도되어야 하는가. 만약 대통령과 주무 부처 장관이 입장하기 전 수훈자들과 따뜻한 환담을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100세를 맞아 청려장을 받는 노구(老軀)의 어르신 휠체어를 밀며 함께 입장했다면 어땠을까. 가족들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박수치게 했다면 그 훈장의 가치는 얼마나 더 찬란했을까. 영부인이 함께한 손자 손녀를 한 번 안아주었다면 얼마나 푸근하고 따뜻했을까.
국격은 화려한 무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누구를 먼저 앞세우고 누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지가 수준을 말해 준다. 국가 포상의 주인공은 수여자가 아니라 수훈자다. 서훈식의 중심에는 수여자의 권위뿐 아니라 수훈자의 영예가 있어야 한다. 그때 훈장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훈장은 한 사람의 평생에 국가가 바치는 가장 숭고한 경의(敬意)다. 수훈자와 가족을 온 마음으로 환대해야 한다. 국격은 훈장의 무게가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결정한다.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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