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郁金香), ‘생명의 네거티브 265장(生命的265?底片)’ 연작, 2025. ⓒ郭宬, Guo Jing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오래전 행복했던 순간은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불과 며칠 전 일이 희미해지기 일쑤다. 기억은 시간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절의 장면이 겹쳐지기도 하고, 잊고 있던 순간이 뜻밖의 감정과 함께 되살아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삶은 지나온 날들의 순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 남긴 흔적의 모음인지도 모른다.
중국 여성 사진가 궈청(郭宬)의 ‘튤립(郁金香)’은 이러한 기억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짙은 갈색 배경 앞, 꽃병의 튤립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 꽃은 붉고 노란 꽃잎을 활짝 펼치고 있지만, 어떤 꽃은 고개를 숙인 채 시들어 있다. 흐릿하게 겹쳐진 꽃과 잎은 오래된 유화처럼 보인다. 사진 속 꽃들은 같은 날의 모습이 아니다. 작가는 한 달 동안 매일 촬영한 30장의 사진을 겹쳐 하나의 이미지로 완성했다. 꽃의 생애를 통해 시간과 생명을 탐구하는 연작 ‘생명의 필름 265장’ 중 하나다.
궈청이 처음 튤립을 샀을 때, 상인은 사흘 정도면 시들 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3일째 되던 날 줄기가 힘없이 처졌다. 그런데 그다음 날 뜻밖에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후에도 꽃은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작가는 이 예기치 못한 변화를 지켜보며 꽃이 피어나는 순간부터 서서히 시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시간은 한장의 사진 속에 포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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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활짝 피어난 꽃의 모습은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하지만, 시들어가는 꽃에는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궈청은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그 시간까지 하나의 화면에 담아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에도 오래 붙잡아 두고 싶은 날이 있는가 하면, 차라리 지워 버리고 싶은 날도 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을 마음대로 골라낼 수는 없다. 사진 속에서 시든 꽃과 활짝 피어난 꽃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같은 생명이 지나온 서로 다른 시간의 모습일 뿐이다. 그렇게 30일의 시간이 한장의 사진 속에 머문다. 피어나는 순간도, 시들어가는 순간도 어느 것 하나 사라지지 않은 채.
석재현 사진기획자·대구사진비엔날레 예술감독
석재현 사진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