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연 교수
최근 TV 뉴스나 SNS 화면을 켜기가 두려울 정도다. 네팔과 티베트를 비롯한 아시아 대륙 곳곳에서 터져 나온 폭우와 빙하 붕괴, 그리고 이에 이어진 대규모 홍수의 참상은 화면 너머의 우리에게 깊은 충격과 참담함을 안겨주고 있다. 수십 년간 지역 공동체를 이어주던 육중한 다리가 거센 흙탕물에 맥없이 끊어져 나가고, 누군가의 소중한 일상과 꿈이 담겨 있던 집들이 형태도 없이 떠내려가는 장면은 인류가 마주한 기후 재난의 실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종자와 사망자 소식이 매일같이 전해지는 뉴스를 접하며 수많은 이들이 깊은 우울감과 막막함을 호소한다. 직접 현장에 있지 않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안전한 곳에 머물고 있음에도 우리의 마음 역시 그 거센 물살 속에서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정신건강 분야에서는 이를 대리 외상(Vicarious Trauma)으로 설명한다. 참혹한 재난 현장이나 타인의 극심한 고통을 반복적으로 접할 때, 인간은 마치 자신이 그 비극을 직접 경험한 것과 같은 심리적 상흔을 입는다. 나 그리고 내 주변 공동체 역시 저런 불확실한 재앙 앞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근본적인 통제력 상실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재난심리회복지원 활동가로 세월호 참사, 무안 제주항공 참사, 5·8 경주지진으로 건물이 허물어진 붕괴 현장 등 다년간 재난 현장의 가장 깊은 어둠을 목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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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에서 활동하며 끊임없이 깨달은 사실은, 이러한 심리적 붕괴가 결코 개인의 예민함이나 약함 때문에 발생하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이다. 이는 재난 현장에서 우리 모두가 마주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위험(Social Risk)이다.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기반 시설이 취약한 국가, 주거 불안정에 시달리는 저소득층, 그리고 사회적 약자층이 가장 먼저 삶의 뿌리를 빼앗긴다. 그리고 그 비극을 무력하게 바라보는 대중의 정신건강 또한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공감 피로(Empathy Fatigue)에 노출된다. 타인의 고통에 지나치게 몰입하다가 심리적 고갈을 느끼며 무감각해지거나, 뉴스를 회피해버리는 집단적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력감이 사회 전체로 고착화되면 연대의 동력마저 상실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재난을 바라보는 사회 구성원들의 무너진 마음을 돌보고 이를 지속 가능한 연대의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논의를 해야 한다.
첫째, 개인적 차원에서의 건강한 정보 소비와 심리적 방어선 구축이 필요하다. 재난심리지원 첫 번째 원칙은 '안전 확보'다. 미디어가 퍼뜨리는 자극적인 재난 영상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기보다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되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뉴스 다이어트와 심리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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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의 집이 튼튼해야만 국경을 넘어 타인을 향해 손을 내밀 여유가 생긴다.
둘째, 국가와 사회의 재난 복구 패러다임이 물리적 재건에서 심리적 안전망 구축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무안제주항공 참사나 세월호 등 수많은 재난 현장이 남긴 교훈은, 긴급 구호 정책만큼이나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장기적인 심리·사회적 복지 전달체계가 중요하다는 .이다. 인도적 지원을 논할 때도 물품을 넘어 재난 정신건강 지원을 포함하는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셋째, 화면 너머의 무력감을 '작지만 구체적인 사회적 연대'로 승화시켜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트라우마 생존자들이 회복되는 순간은, 스스로가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통제감을 찾을 때였다. 피해 지역을 향한 기부,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내기, 내 이웃과 지역사회의 안전망을 。검하는 일 등 아주 작은 행동일지라도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감각을 가질 때 인간은 회복의 동력을 얻는다.
거센 폭우에 다리는 끊어지고 집은 떠내려갔을지언정, 인간과 인간을 잇는 공감과 연대의 마음마저 쓸려 내려가게 둘 수는 없다. 겪어보지 못한 거대한 재해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은 우리가 아직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아파할 줄 아는 온기를 지닌 존재라는 증거다. 재난심리회복지원 현장과 수많은 참사 비극을 거치며 우리가 배웠듯, 무너진 마음의 자리에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삶을 일으켜 세우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새로 지어 올려야 할 때다.
통합적 접근이 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