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화
“배고프다. 또 뭔데?”
“제가 경험이 많다는 거 알고 계시죠?”
“알지”
“늑대형님이나 개 선배, 그리고 돼지 사이에 또 누구 있죠?”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돼지가 바보냐구요? 지가 직접 나서서 이런 일 하면 얼마나 위험부담이 큰데 그걸 모를까요? 제가 보기엔 분명 내세운 자가 있을 겁니다.”
개는 깡마르고 꼬리에 검은색 털이 있는 늑대의 말에 깜짝 놀랐다. 정말 그랬다. 돼지가 개에게 일을 부탁하고 늑대형님이랑 한두 번 만난 뒤 그 다음부터는 직접 만날 수 없었다. 다행히 처음 만날 때 녹음을 해 둔 것이 천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깡마르고 꼬리에 검은색 털이 있는 늑대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물어와 지레 화들짝 놀랐던 것이다.
“어. 어. 그렇지. 우리도 돼지를 보호해 줘야 하니까.”
“그럼 그 양반도 한 번 만납시다. 내가 야전사령관이면, 그 양반도 한 번 봐야지 않겠어요?”
“꼭 그렇게 까지야~”
“아니 생각해 보세요. 이런 일 하다보면, 애들 사기도 올려주고, 확신도 주고 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럼 그 때마다 돼지가 한 마디씩 해줘야 하는데 돼지보고 나와라 할 수 없잖아요. 또 상황이 긴박한데 늑대형님 개선배 통해서 언제 만나요? 기동성 떨어지게시리~ 기왕에 그쪽도 작전참모부가 있는 것 같으니 그 양반을 내가 알고 있어야 그 때 그 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응. 알았어. 그럼 늑대형님이랑, 나랑, 그 양반이랑, 니랑 해서 저녁 한 번 먹자.”
“언제요? 대충대충 언제 먹자 이렇게 하지 마시고. 내일 같이 보시죠?”
“내일?”
“아니 일이란 것이 될라면 되게끔 해야지요. 시간 끌면 느슨해진다니까요!”
“알았다. 내일 저녁에 하고. 장소는 내가 따로 알려줄게. 이제 됐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
깡마르고 꼬리에 검은색 털이 있는 늑대는 점심식사 장소로 향하며, 입 꼬리에 옅은 웃음을 졌다. 마치 자기가 의도한 대로 잘 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반대로 개는 무언가를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 거리며 걸었다. 개의 머릿속에는 아까의 대화가 잊혀지질 않았다.
‘저, 깡마르고 꼬리에 검은색 털이 있는 늑대한테 한 방 먹은 기분이야. 지는 착수금도 받고, 동네 일하면서 거기서도 받고, 애들한테는 지존이 되고....참...내가 왜 집한 채 값을 착수금으로 받게 해준다고 했는지....참...아, 그리고 그 양반을 소개하면 깡마르고 꼬리에 검은색 털이 있는 늑대가 우리를 제끼고 다이렉트로 일할 수도 있는 거잖아? 어허...이거 참...’
점심식사 자리는 조용했다. 서로 말을 아끼며, 밥만 먹고 있었다. 무리들 중에는 예전부터 서로 알고 있는 이들도 꽤 있었다. 대충 봐서 세 개에서 네 개 정도의 무리로 구분되는 듯 보였다. 뻘쭘한지 눈동자를 가만두지 못하는 개와, 발목에 팔찌를 낀 개, 색안경 낀 늑대, 그리고 몇몇이 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으나 뭔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자부심 동네의 얼룩무늬 개가 실전교육을 한 뒤, 두어 번의 모임이 더 있었다. 모임이 계속 될수록 참가자들은 매우 구체적인 계획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각자가 그 일을 시작하면 한 달에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까지 계산할 수 있었다. 다만, 개가 일전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역할과 적극성에 따라 차등지급 된다는 것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들에게 최종적으로 전달된 미션은 ‘돼지네 동네에 들어갈 때 서로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다들 그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편, 돼지는 늑대와 개를 두세 번 만난 뒤 곰을 불렀다. 돼지는 곰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취지로 말하고, 자기는 뒤로 빠져 있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으니, 늑대에게 보낸 착수금 때문이었다. 돼지는 곰에게 상의했다.
“곰아, 앞으로는 니가 나를 대신해 일을 해주면 돼. 근데 한 가지 걸리는 게 내가 일전에 늑대에게 착수금을 보냈거든. 그게 흔적으로 남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그걸 돼지 이름으로 입금했어?”
“아니 그건 아냐. 늑대가 대포통장을 하나 만들었고. 나는 내 밑에 있는 애한테 입금하라 했어.”
“그럼 괜찮아. 혹시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입금한 애한테 덮어씌우면 되니까. 그리고 내가 늑대나 개도 잘 아니까 걔들 입단속도 시켜 놓을 테니. 걱정 마.”
“그래, 고맙다.”
“고맙긴~ 그리고 저쪽 애들 다 준비됐거든. 이제 어떻게 할까?”
“응, 전화로 얘기 듣고 준비시켜 놨어. 우리 선산 깎아서 논 만들겠다고 일주일 뒤부터 일꾼들 들어올 거라는 소문 다 내 놨어. 그 때 들어오면 돼. 애들한테는 서로 지들 아는 척하지 말라고 당부했지?”
“그거야 기본이지. 그럼 그렇게 알고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일주일이 지났다.
돼지가 말한 일꾼들이 들어온다는 소문에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돼지가 동네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뒤로 소문이 안 좋아져 이 동네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이사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새로운 이들이 온다는 소식에 들떠 있었다. 소, 코끼리, 물소, 고양이, 들쥐, 오리, 오소리 등등 모두가 나와 일꾼들을 맞이했다. 지금 비록 일꾼으로 들어오지만 우리 동네에 눌러 살면서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충만했다. 비둘기들은 ‘반가워요. 우리 좋은 이웃돼요’라는 현수막을 나무 꼭대기에 걸어 놓기까지 했다.
반면, 일꾼들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자기들이 생각하고 상상했던 동네 모습이 아니었다. 돼지에게 아무 때나 덤벼들고 까불거리는 난잡한 것들일 것이라 생각했을 뿐 이렇게 환대를 받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티낼 수 없기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동네에 들어왔다.
그 다음 날 부터다.